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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카소 Oct 22. 2023

나의 핸드백 디자이너 이력서

나는 2002 월드컵 학번으로 프로덕트 디자인을 전공했다. 

고3 입시미술을 할 때 순수 미술학과에 가기를 간절히 소망했지만,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갈 만큼 수능을 잘 보지 못했다. 원서를 넣는 날 미술학원 선생님은 “이 점수로 네가 원하는 학교의 회화과는 못 간다. 디자인과에 하나, 같은 학교 지방 분교의 디자인 학부에 원서를 넣어라!” 윽박지르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1년을 소망했던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것이다.   


인생에서 딱 한번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 원서를 넣는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때의 나는 왜 나를 믿지 못했을까. (지금은 디자인 전공자임이 좋고, 감사하지만)

미술학원 선생님들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순수 미술보다는 디자인이 돈 벌기가 낫다며 잘한 결정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나도 그렇게 합리화하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디자인도 배워보니 뭐 나쁘지 않았다. 그냥저냥 따라갔다. 학기 점수도 중간 정도. 배움에 대한 열정도 중간 정도. 동아리 활동도 중간. 교우 관계도 중간. 연애도, 노는 것도, 재미도 중간. 모든 것이 중간에서 왔다 갔다 했다.

학원 선생님 때문에 선택하게 된 디자인 전공이라는 못난 생각으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 4년 내내 성적을 포함하여 모든 것의 중간을 유지했던 나는 대기업은 지원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내 스펙으로는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팩트였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 다른 전공 대학원 원서를 넣었다. 서류 전형은 합격했지만, 면접은 보지 않았다. 치열하게 해 본 적이 없으니 보여줄 것이 없었고, 포트폴리오 제작 등 면접 준비가 막막했다. 배움에 대한 진심 어린 욕구가 아닌 도피성 지원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저 그런 수준으로 대학을 다녔던 내가 대학원 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은 생각이 들자 포기도 쉬웠다. 응시료만 날리고 예고된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빈둥거리는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문득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어디든 들어가서 돈을 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되는대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었다. 대부분 떨어졌다. 유일하게 한 회사에서 면접 일정을 잡자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최종 사장님 면접까지 거쳐서 나를 선택해 준 곳은 가방을 디자인하고 생산해서 대기업이나 브랜드에 납품하는 ODM 회사의 디자인실이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나의 첫 회사가 결정되었다. 그 뒤로 퇴사와 프리랜서, 개인 브랜드 론칭까지 약 10년을 핸드백과 가방, 지갑 소품 디자이너로 일 했다.


당시 나와 같은 전공을 한 친구들은 핸드폰이나 가전제품 혹은 가구 등 형태가 잡힌 제품을 디자인하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도 그런 수업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생각한 가방이란 "패션과 제품 중간쯤에 위치한, 형태가 잡히지 않은 일상적인 물건" 핸드폰이나 가전제품 디자인보다는 재미있을 거 같았다. 


당연히 나는 디자인실의 신입이자 새내기, 막내였다. 허드렛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대기업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받아서 샘플 자제를 챙기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샘플 가방을 제작하고, 무사히 생산하게 돕는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 그것이 하루 종일 해야 하는 나의 일이라는 것이 수개월이 지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배울 생각보다 막무가내로 남의 디자인을 받아서 일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서 싫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출시해보고 싶다는 욕망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중간 역할이 그렇게까지 거북한 일인가 싶지만, 24살의 나는 매일 아침마다 그 몹쓸 자만심이 날뛰는 통에 출근길이 지옥길이었다. 결국 1년을 못 버티고 퇴사를 결정했다. 


국내의 작은 핸드백 브랜드로 이직했다. 막내 디자이너의 고단함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그렇게 원했던 일을 해 볼 수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종이에 스케치하고 고심해서 결정한 컬러와 소재로 디자인한 핸드백이 실물로 제작되어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는 경험은 마법 같았다. 이렇게 제품이 출시되고 누군가에게 판매되는 것이 신기하고 또 뿌듯해서 첫 직장보다는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하고 2년 차쯤 되었을 때, 가방 디자인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월급이 몹시 짰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며 회사를 다녔다. 


아 이렇게 디자인이 재미있는데, 돈까지 받네?


3번 째 회사에서 작업했던 샘플 리스트

특히 지갑이나 액세서리, 키링 등 아기자기한 소품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했다. 신나게 자료 찾고, 시장 조사하고, 어떤 가방을 출시하면 잘 팔릴까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스케치해서 디자인하고, 개발실에서 샘플을 만들고, 꼼꼼하게 가방을 살펴보며 생산 지시서를 썼던 귀여운 시절이다.  


입사한 지 반년 정도 지나자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가 있었다. 월급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황당하게도 월급이 안 나오는 것이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분위기였다. 

습관적으로 밀리는 월급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중간에 개인 사정으로 약 1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이곳에서 총 3년 6개월 정도 일을 하다가 결국 구직 사이트를 드나들며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당시 50년 역사를 갖고 있는 구두 회사에서 신규로 론칭한 가방 브랜드 디자이너 충원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실무진과 임원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소식을 받고 공백 없이 출근 날짜를 결정했다. 입사하고 기대했던 브랜드에서 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없어서 실망감도 있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상황은 차츰차츰 좋아졌다. 여전히 가방과 지갑 디자인을 하고 샘플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과정은 흥미로왔다.  


패션 및 액세서리 브랜드는 늘 한 해 정도 앞서서 디자인을 준비한다. 봄과 여름(S/S), 가을과 겨울(F/W) 시즌에 맞춰서 시장조사를 하고,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을 하고 샘플을 개발했다. 

샘플의뢰서를 들고 샘플 제작 업체에 가서 작업 방향에 대해 소통하고, 필요한 자제를 구하러 동대문 시장, 성수동 가죽 시장, 신설동 부자재 시장을 부지런히 다녔던 시절이었다. 




품평회 풍경

기획한 방향성과 수량대로 샘플이 완성되면 품평회를 열었다. 각 지역 매장의 판매 매니저님들과 상품 기획팀, 마케팅과 영업팀 그리고 관련 부서 임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다음 시즌에 출시될 디자인을 미리 보고, 의견을 나누고 평가하는 자리였다. 한 해의 회사 이익을 책임 질 가방 및 지갑 디자인의 좋은 점과 개선할 점을 파악해야 하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업무이자 한 해의 큰 이벤트였다. 



품평회를 통해 다음 시즌 출시할 가방과 지갑 디자인이 결정되면, 마케팅 팀에서 카탈로그로 만들어서 홍보를 하고 각 매장에 배치하곤 했다. 


내가 마지막에 맡았던 신규 브랜드는 핸드백이라는 시장에 '남성 브랜드'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백화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회사가 기대하는 만큼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투자 대비 수익은커녕 당장 유지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수익을 빨리 내고자, 뭔가 늘 성급하게 돌아갔다. 회사는 브랜드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기다려주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태도는 더 이상 희망 없음을 예고했다. 결국 회사는 내가 맡고 있던 신규 브랜드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애착을 갖고 일했던지라 몹시 씁쓸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였다. 회사에 남아있던지 나오던지. 

그날 밤 남편과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했다. 나도 나의 마지막 브랜드와 함께 직장인 디자이너로의 삶은 막을 내리기로. 


첫 직장을 제외하고 일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직장인 디자이너로써 브랜드나 회사 규모, 급여 등으로는 잘 풀리지는 않았다. 스스로 늘 부족하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들 또는 디자이너들과도 연봉 차이도 있어서 비교심과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겉으로는 티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말이다. 


다 지나간 과거다.

그때 경험하고 배운 것들이 모두 영양분이 되었다. 

잊은 줄 알았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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