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가방 핸드백 디자이너 최총 경력 8년을 채우고 퇴사했다.
결혼 3년 차였고, 아기는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 백수가 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직을 고려해 보았지만, 출산을 하게 되면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는 경단녀에 전업맘은 예고된 일이었다.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서자, 엄마가 되기 전 경제적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남편과 상의 후 퇴직금으로 나의 브랜드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도 흔쾌히 해보라고 했다. 8년 동안 해온 일이고, 한창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개인 브랜드가 생기던 때라 나도 그 길에 들어서 본 것이다.
퇴사 전에는 회사라는 방패막이 있었지만, 퇴사 후 나에게 회사는 곧 나 자신이었다.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어리석었던 나는 해왔던 대로 일을 시작했다. 지갑과 클러치, 소품들을 스케치를 했고, 회사에서 했던 수량만큼, 디자인한 제품들을 생산했다. 최소 50개, 보통 80개, 어떤 건 100개씩. 스타일도 한두 개가 아니라 컬러별로 나누면 몇십 가지로 불어났다. 내가 만들면 당연히 잘 팔릴 줄 알았다. 이 놈의 근거 없는 자만심은 나를 끝없이 추락하게 했다.
당연히 사무실 구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장에서의 대량 생산, 그것도 베트남에서 제작된 제품들이 박스 안에 빼곡히 포장되어 물 건너왔다. 거실도 없이 방 두개 화장실 1개의 13평 좁은 다세대 주택 102호를 신발장에서부터 침실 한편, 부엌까지 테트리스처럼 차곡, 차곡 채워졌다. 테트리스는 일자로 맞추면 사라지기라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상자가 넘어지지 않고 잘 쌓여있을 뿐이었다.
디자이너로 했던 업무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마케팅이나 판매하기 위한 치열한 공부와 노력 없이 해왔던 경력에 의존해서 1인 브랜드를 꾸려나가기에 현실은 냉정했다. 그 때 부터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에 대한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집에서,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박스 안 제품들이 날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웃지 마!
너희를 어디다 어떻게 팔아야할까?
처음에는 카페 24에서 도메인을 사서 판매 사이트를 만들었다. 지금이라면 셀프로 디자인 했을 텐데, 그 때는 돈을 주고 디자인을 의뢰했다. 오픈 소식을 알렸을 때 지인들이 조금 사주었다. 그러고 며칠 뒤 사이트는 다시 조용해졌다.
한 개인이 물건을 만들어서 온라인에서 판매한다는 건 마치, 망망대해에서 물건 살 사람을 찾는 모양새랑 비슷했다. 무섭고 외롭고 막막했다.
더 이상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 다음에는 온 오프라인의 편집샵에 입점 제안서를 넣었다. 이름 있고 유명한 곳은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규모를 따지지 않고 다 넣었다. 입점이 결정되면, 판매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든다. 디자인과 컬러가 많아서 제품을 등록하는 일도 만만하지 않았지만, 어디서든 노출되고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당장 하나라도 팔리는 것이 중요했다.
상품 등록 과정이 완료되면 MD가 신규 브랜드 소개 페이지를 만들어서 사이트 메인 한 구석에 띄워주었을 때만 조금 팔릴 뿐이었다. 그때 확 치고 나가서 긍정적인 매출을 보여주지 못하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없었다. 입점 이벤트할 때 잠깐 반짝할 뿐이었다. 이후로 내 제품이 입점된 많은 온 오프라인 편집샵도 조용해졌다.
나도 조용해졌다.
집안 곳곳에 적재되어 있는 상자들을 보면 조용히 눈물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고, 관심 받지 못하는 제품들, 그저 우리집 한 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퇴직금을 들여 세상에 쓰레기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향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