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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카소 Oct 22. 2023

솟아날 구멍을 찾아서, 프리마켓 셀러

과하게 생산해 낸 지갑과 소품들과 함께 조용히 집에만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것들 존재의 부담스러움과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죄책감 등이 뒤엉켜 우울증이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발버둥이라도 쳐야했다.

어디서에서 판매할 수 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작가들이 직접 만든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프리마켓이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관련 정보가 올라오는 카페에 가입해서 참가비가 싼 곳부터 하나 둘 신청해보기로 했다.

어느 프리마켓이든 자리세로 통하는 참가비가 있었다. 어떤 곳은 하루에 삼 만원부터 목이 좋은 곳은 십 만원 대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깔고 가야하는 금액으로 매출이 없는 나로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감수해야 했다. 간혹 지역에서는 개최하는 프리마켓 중에서는 하루 참가비가 만원 정도로 저렴하게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또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초보 셀러로 최소한 참가비만큼은 판매하고 오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맨 처음으로 참여한 프리마켓은 (지금은 사라진) 디자이너 협동조합에서 개최한 프리마켓이었다. 협동조합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참가비가 비싸지 않았다.

집에서 안 쓰는 캐리어를 찾아내서 판매할 지갑과 제품들의 수량을 파악하며 가득가득 담았다. 많이 못 팔아서 다시 들고오는 번거로움 보다 없어서 물거이 못 파는 상황이 더 안타까웠기에 무거워도 욕심을 부렸다. 예전에 광화문 중고 마켓에서 판매해본 경험을 떠올려 천원, 오천원, 만원 현금으로 잔돈을 준비하고, 지갑을 세울 수 있는 거치대 등을 만들었다.

몇 년 전 재미로 부수입을 만들어 보겠다고 참여했던 중고 마켓 때와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랐다. 퇴직금을 털어 만든 무수한 재고를 팔아서 하나씩 없애야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내 성격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스케치하고, 업체에 의뢰하는 업무가 대부분이었던 디자이너로만 일을 해와서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세요~ 팔아요~" 말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물건을 판매해보겠고 매대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색해지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남편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전 날 밤, 남편과 작은 회의를 통해 처음에 정했던 판매가가 아닌, 2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기로 했다. 플리마켓에서만 할인해서 판매하는 금액이라고 설명해야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물단지 같은 제품들을 가득 채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나갔다. 우리 자리를 확인하고 챙겨간 공공칠 가방을 열어서 미리 구상해본 대로 지갑과 소품들을 디스플레이 했다. 판매할 준비를 완료하고 나서야 도자기, 문구, 굿즈, 슈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마켓 오픈 시간이 되었다. 간간히 입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의 매대를 관심있게 봐주는 분들이 있긴 있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구경해도 가만히 서 있거나, 묻는 질문에만 간단하게 답하고 말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판매가 이뤄지는데 우리 테이블은 몇 시간 째 아무런 소득없었다. 0원으로 꽤 긴 시간이 흐르자 이렇게 해서는 가지고 나온 제품을 그대로 캐리어에 담고 귀가할 거 같은 직감이 들었다. 서서히 내 제품에 눈길을 주는 사람들에게 먼저 지갑의 디자인적 특징과 소재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상했던 할인 판매가에서 서비스 제품을 더해서 어떻게든 판매로 이어지게 하려는 노력을 더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음을 받아들어야 했다. 안 해봐서 느껴지는 어색한 저항을 이겨내야 했다. 나는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고정관념도 버려야했다.

아주아주 조금씩 그렇게 물건을 파는 상황에 익숙해졌다.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이 당장 내 눈앞에 지나다닌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집에 앉아서 온라인 주문을 기다리고 있을 때보다는 돈이 벌렸다. 남편과 번갈아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팔았다. 당장 하나씩이라도 판매해서 재고를 소진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와우! 그렇게 첫 프리마켓에 참여해서 물건을 판매하고 얻은 수익은 12만원 정도였다.

나에게는 몹시 의미 있고, 큰 돈이었다. 집에 있었으면 '나는 망했다'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여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을텐데, 밖에서 한나절을 직접 판매 해보니, 내 제품을 설명했을 때의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바로 느낄 수 었고, 12만원이라는 큰 소득까지 생겼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때부터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내가 투자한 금액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뭐라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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