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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카소 Mar 11. 2020

폐업 신고하면서 결심한 것 3가지

약 1년 반을 매일 프리마켓과 디자이너 마켓에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재고를 하나씩 하나씩 소진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욕심으로 날려먹은, 나를 무엇이든 하게끔 만든 퇴직금만 회수할 수 있었다. 됐다! 성공이다. 


더불어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 주수와 아기의 건강을 확인하고 나서야 폐업을 준비했다. 폐업 신고를 하기 위해 집 근처 세무소에 걸어가면서 아인슈타인 박사님의 명언을 떠올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에너지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에 진동을 맞추면 그 현실을 얻게 된다.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물리학이다. 


이 명언의 의미를 나와 잠깐 인연이 되었던 한 생명체와 나의 육체로 깨달았다. 임신하기 4개월 전 먼저 생긴 아기가 있었지만, 유산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왜 인연이 되지 못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물리학적으로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쓴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플리마켓을 더 다녀야 했고, 내가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숙제가 남아 있었다.

'딱 내가 쓴 돈만큼만 회수하자'라는 목표 금액을 채우고 나서야 건강한 아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목표한 금액만 채우면 플리마켓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마음이 간절했다. 더 이상 밖으로 돌고 싶지 않았고, 집에 있고 싶었다. 원하는 타이밍의 임신은 내가 생각한 대로 창조된 현실이었다.





입점해있던 온, 오프라인의 많은 편집샵 담당 MD들에게 불가피하게 브랜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안내 메일을 보내던 날 밤. 언젠가 내가 다시 돈을 번다면, 이라는 가정을 설정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난 앞으로 어떤 형태로 돈을 벌어야 할까?

무엇을 팔아야 세상에 쓰레기가 되지 않게 될까?

좀 재미있게 의미 있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들이 툭툭 떠올랐다. 

새벽부터 캐리어를 끌고 평일과 주말 없이 온갖 플리마켓을 다니며 느꼈던 육체노동의 고달픔에 진절머리가 났다.

외부에서 낯선 사람들을 상대하고 물건을 판매하면서 하루 종일 느꼈던 감정노동의 피곤함에 지쳤다.

이렇게까지 스스로 고갈되는 느낌이 아닌,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그 방법이 무엇이다.라는 명쾌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망한 브랜드를 수습하면서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결심했던 3가지가 있었다.


1. 밖에 나가서 돈 버는 일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게 하지 않을 것. 즉,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벌 것.

내가 혹은 누군가가 밖으로 나가서 활동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직접 움직여야만 돈을 벌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일도 벌 수 있는 금액도 한정적이다. 우리 몸은 하나이고 주어진 하루의 시간 또한 24시간으로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자리를 잡거나,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벌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모르던 단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상상한 듯하다.


2. 대량으로 물건 생산해서 판매하지 않을 것. 물건보다 지식이나 무형의 것을 팔 것.

제3 국에는 계속해서 공장이 세워지고, 각종 물건과 의류, 패션 잡화들이 끊임없이 생산된다. 지구의 크기에 비해 물건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쳐나는 물질에 대한 회의감은 3년간 집 안 물건 비우기로 이어졌다. 아기를 임신하고 집에서 가장 몰두했던 일이 필요 없는 물건들을 팔고 버리고 비워내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삶에 새로운 유익을 주는 물건이 아니라면 나까지 나서서 비슷한 용도의, 디자인만 살짝 다른 물건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물건보다 지식이나 무형의 것을 팔고 싶었다. 지식, 예술과 같은 무형의 가치, 그 무언가는 그 자체로 나 자신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 무너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지속하며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런 생각들로 이어졌다.     


3. 욕심내지 않을 것. 할 수 있는 만큼으로 시작하면서 성장할 것.

이 모든 결과는 나의 자만과 욕심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내가 해봤으니까, 만들면 당연히 잘 팔리겠지, 이런 근거 없는 자만심. 욕심이 크면 일이 틀어진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게 흐른다. 

하나를 팔더라도 더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은 제품의 가격 책정에도 실패를 불렀다. 자만심이 있던 상태에서 위기를 느끼면 순식간에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내가 착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이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중심이 흔들리면서 금방 할인 가격을 내놓게 되었다.


할인은 광고입니다. 브랜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광고 


강민호 작가의 '브랜드가 되어 간다는 것' 책에 나온 내용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근거가 있는 마케팅 차원의 할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할인은 브랜드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생산해낸 것도, 물건의 가치보다 더 많은 금액을 붙인 것도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는 그렇게 어리석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물건이든 서비스든 자신에게 당당한 일과 금액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맞는 옷, 나에게 맞는 일, 나에게 맞는 금액으로 시작해서 정직하고 자연스럽게 성장하겠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안녕, 플리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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