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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퍼상'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2014년 직장인들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주었던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당시 큰 인기가 있었던 웹툰을 원작으로 하였던 이 드라마는 무역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직장인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내용이었습니다.
드라마 속의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 내었던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준다는 신당동 떡볶이 레시피만큼이나 알 수 없다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를 미생으로 이끌었습니다.
혹시 '오퍼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예전에 무역업을 통칭하는 말로 쓰였던 표현입니다.
드라마 '미생'의 배경은 무역회사로서 대기업의 경우 '물산', '상사' 또는 '종합상사'라는 이름의 계열사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무역회사들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수출을 통해서 현재와 같은 무역강국으로 발전하는데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무역회사는 가장 치열하고 화끈한 직장생활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상품의 기획과 생산, 그리고 판매와 수출까지를 총괄하는 과정을 모두 담당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빈 공터에 멋진 건물을 짓거나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작업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힘들고 고된 과정을 거쳤으나 그만큼 성취와 성공의 기쁨도 컸습니다.
원작인 웹툰이 시작된 것은 2012년이었으며, 드라마는 2014년에 방영되었습니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드라마에 묘사된 직장생활과 지금의 직장생활은 너무도 많이 변하였습니다.
2. 조직 문화 관점으로.. (다시 보는 미생)
10년 전과 현재는 조직 문화 상에서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강력한 상하관계 속에서 상사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으며, 부하에 대한 강력한 지휘 관리를 행합니다.
또한 업무양의 경우에도 야근이 거의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업무량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조차도 쉽게 허용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너희 아이들 돌잔치까지 다 봤어!'라는 대사에서 나타나듯이 집안 대소사를 같이 공유할 정도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형성하였습니다.
당시는 업무 자체도 중요하겠으나, 조직 내 관계 역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무역업이라는 특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지만) 혼자 만의 개인기보다는 팀 전체의 활동을 통해서 성과를 만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또한 개인주의적인 태도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반감은 매우 강하였으며, 업무 중에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분위기였습니다.
회사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나 동료애가 가장 우선되는 가치였으며, 이에 반하는 생각이나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배척되기 마련이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강력한 꼰대중심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업무적 성취와 성공 및 업무 능력 향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정 상의 문제들은 묻히던 시절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지금도 저런 회사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도 있기는 합니다.. 실은 아직도 꽤 많이 있습니다.
지금의 리더들 중 상당수는 드라마에서 나왔던 조직 문화 속에서 신입사원과 젊은 시절을 보냈던 분들이며, 그들의 직장 DNA 속에는 아직도 그 시절에 대한 향수나 기억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헉.. 정말요?.. 정말 아직도 저런 회사가 있어요?'라는 의문이 들거나 '나 같으면 저런 회사 안 다녀요!'라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직장이 건강하고 행복한 직장이라고 생각하시거나 시대변화에 잘 적응하는 유연한 상사를 만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3. 직장 내 괴롭힘 관점으로.. (다시 보는 미생)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은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곧바로 신고가 들어갈 내용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상사의 감정적인 폭언이나 업무를 빙자한 인격모독이나 심한 갈굼 등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견디는 것 마저도 태도이며 능력이라고 여겨지며, 그것을 못 견디는 것은 부하직원들의 개인적 문제 또는 무능함이나 불량한 태도로 치부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성희롱과 관련된 부분들은 더욱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아주 당당하게 '여자가 말이야..'라는 것은 일상적이며, 여사원의 몸매를 대 놓고 쳐다보면서도 당당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그게 무슨 문제야?!'나 '그럼 그런 옷을 입고 다니지 말아야지!'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대 놓고 자행되는 성차별과 성희롱은 부지기수였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조직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인식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 이슈가 이제는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누가 봐도 문제이며 분명하게 잘못되고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할 것입니다.
다만 아직도 그 시절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혹은 아직도 속으로는 그때의 기준이 맞고 지금의 기준들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많은 노력과 개선이 필요합니다.
4. 비즈니스 관점으로.. (다시 보는 미생)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시가총액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2001년도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기업은 어디였을까요?
1위. 삼성전자, 2위. SK텔레콤, 3위. KT(당시 한국통신공사), 4위. 국민은행, 5위. POSCO 순이었습니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1년도 시가총액 상위기업은 변화가 좀 생깁니다.
1위. 삼성전자, 2위. 현대차, 3위. POSCO이며, 4위와 5위는 현대모비스와 기아차였습니다.
이 시기가 바로 미생의 배경이 되었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난 후 이 순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1위. 삼성전자, 2위. SK하이닉스, 3위. 네이버, 4위. 삼성바이오로직스, 5위. 카카오였습니다.
10년 전이었던 2011년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20년 전인 2001년도와 비교한다면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뒤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 상에서도 반도체와 플랫폼 비즈니스, 그리고 바이오의 뚜렷한 약진이 돋보입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적 변화는 웹툰이나 드라마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직장생활을 묘사하는 드라마의 경우에는 IT업체나 게임회사, 혹은 스타트업 등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것들이 직접적으로 비즈니스 변화를 반영해주지는 않을 수 있으나 적어도 시청자나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시사해주기는 합니다.
5. 오늘 당신의 미생은 어떻습니까?
지금 당신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는 어떤 회사입니까?
지금 회사의 조직 문화는 어떻습니까?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의 관점에서 본 지금의 회사는 어떻습니까?
지금 회사가 최근 각광받는 비즈니스 영역입니까, 아니면 오히려 10년 전에 주목받던 회사였습니까?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바쁘게 사느라고 우리의 현재 위치를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보는 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당장 눈앞에 닥치는 일들에 집중하느라고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객관적으로는 너무 좋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이나 불만에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인 미래가치나 비전 등의 용어들은 한가한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용어로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10년 전, 또는 20년 전의 미생과 지금의 미생을 비교해 보는 것도 꼭 필요한 활동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변화하였으며, 왜 변화하였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민은 10년 전, 20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해왔던 분들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10년 후, 20년 후 나의 직장생활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밑바탕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6. 10년 후 우리의 미생은...
10년 후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그리고 그 속에 일부로서 활동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후 이 글을 다시 본다면, 혹은 다시금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미생이라는 드라마나 웹툰을 다시 본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생각이나 판단, 세상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평가와 그에 따른 감정들은 오늘에 기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이나 판단은 항상 바뀔 수 있습니다.
보다 합리적인 로직을 적용함으로써 바뀔 수 있으며, 경험이 축적되며 변화되기도 합니다.
분명한 점은 오늘의 생각과 판단 만이 모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많은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10년 후 우리의 미생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후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인내력이며 두 번째는 변화 대응 능력입니다.
앞으로의 10년은 우리가 겪어왔던 10년에 비하여 훨씬 더 빠른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발생할 미지의 변화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그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닥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서 적응하고, 그 과정에서 좌절을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 2가지 마음가짐만 튼튼하다면 10년 후 당신의 미생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 있을 것이며, 당신은 성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시점 기준..)
저희 회사는 연휴가 끝나고 모두 재택근무 중입니다.
연휴 후 첫날은 사상 최고의 한파가 온다고 해서 재택을 하였으며, 연휴 끝 두 번째 날인 오늘은 폭설이 내려서 재택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10년 전의 기준으로 보면, '눈 좀 왔다고 날씨 좀 춥다고 출근을 안 해?'라는 타박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20년 전의 기준이라고 하면, '그딴식의 흐리멍덩한 정신력으로 무슨 회사생활을 한다고 하는 거야?'라고 호통을 치면서 책상 위 물건이 날아왔을 수도 있겠지요.
제가 항상 강조하는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물 흐르듯이'와 '그러련이..'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서 정색하고 따져봐야 큰 물줄기를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과거의 기준으로 호소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냥.. 세상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련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마치 작은 배를 타고 큰 물줄기에 따라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감을 즐기시는 것이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