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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May 07. 2019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하는 세가지 흔한 실수

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세상 이야기. 공감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역시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듯 마음이 힘든 시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하며, 나 또한 타인에게 큰 위로와 지지를 제공해주고자 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의도는 좋으나 실제로는 마음이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비록 의도가 좋더라도 결과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더욱 다치게 할 가능성이 높은 표현이나 말들은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충분히 지쳐있고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의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거나 혹은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되는 표현이나 접근들은 다음과 같다. 



1. 확인 사살. '많이 힘들지?'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는 '확인사살'이다. 힘든 사람은 안 그래도 힘든데, 얼마나 힘든지를 질문하면서 더 힘들게 하지 말라. 


물론 궁금하다. 얼마나 힘들고, 어디가 힘들고, 언제부터 힘들었으며, 어떻게 힘들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그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하다. 하지만 자기 입장에서의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확인하여 고통스러운 내용을 다시금 확인하도록 하지 말라. 안 그래도 힘들다. 


특히 상황이나 문제에 대해서 이해가 되어야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실수를 많이 한다. 나름대로 잘 이해하고 공감을 하거나 조언을 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접근이 잘못하면 확인사살이 될 수 있다. 충분히, 그리고 내가 끝까지 책임져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나 혹은 이미 다른 전문가 등에게 적극적인 치유를 받고 있다면 굳이 나서서 확인사살을 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가지가 궁금한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대답을 해야 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증상을 하루에 몇 번씩 설명해야 하는 환자라면 어떨 것 같은가? 수술을 한 후 목소리도 안 나오고 수술부위에 고통만 해도 극심한데, 병문안 온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또한 끝도 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증상의 기원과 과정, 그리고 그 심각성에 대해 반복해서 대답한다고 하면 그 심정이 어떨 것 같은가?


정 궁금하면 다른 루트로 정보를 확인하되 본인에게 너무 진지하게 확인하고 캐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접근은 잘못이다. 그 과정 자체가 마음이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많이 힘든 사람에게 얼마나 힘든지 너무 깊이 묻지 말라. 더 힘들어진다.   



2. 어설픈 공감. '그래 힘들겠네!'


두 번째 피해야 할 접근은 "어설픈" 공감이다. 


진심을 다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담은 진지한 공감은 깊이 있는 위로를 전달하고 마음의 치유를 가져온다. 하지만 깊이 있는 이해와 역지사지를 동반하지 않은 어설픈 공감은 오히려 역기능을 보일 수 있다. 형식적인 공감으로 인하여 충분히 이해받지 못함을 확인하거나 진지하게 기대했던 마음에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상담 초기, 내담자에게 '정말 힘드셨겠네요?!'라고 공감적 표현을 할 때, 예상치 못한 반응을 듣기도 한다. '선생님은 이 정도만 듣고도 정말 제 상황이 이해가 되세요? 어떻게 이 정도를 듣고 다 이해한 것처럼 그러십니까?!'라고 공격적인 반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어설픈" 공감은 오히려 역기능을 할 수 있다. 공감은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위로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어설픈' 공감은 첫 번째 단계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두 번째 단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분히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여 그때의 정서적 상태를 이해하고 수용한 뒤, 그에 대해서 공감적 표현을 하는 경우에는 분명히 위로가 되고 치유의 기능을 보인다. 하지만 마음이 지치고 힘든 사람에 대한 피상적인 공감은 오히려 상처가 되거나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이와 같은 공감을 '기계적 공감'이라고 한다. 즉, 진지한 감정적 반영 없이 말로만 위로를 전하는 경우이다. 전형적인 공감적 표현인 '그래 힘들겠네!'라는 말을 배워서, 이 표현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공감은 상대방의 심금을 울리거나 위로를 제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나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제공하기도 하며, 형식적인 반응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어설픈 공감은 더 이상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그로 인해 더 이상의 진지한 대화나 교류를 단절시키는 역기능을 보인다. 



3. 심사숙고하지 않은 제언. '이렇게 해봐!'


어설픈 공감으로 인한 결과는 어설픈 제언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상태나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조언을 제공하게 된다. 


아마도 상대방은 이미 많은 시도를 해왔을 것이며, 나름대로의 노력도 많이 했을 것이다.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제언하는 수많은 노력들을 이미 해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처절한 노력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제언을 하는 것은 오히려 화를 돋우게 된다. 충분히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거나, 못할 수밖에 없는 좌절스러운 상황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역기능을 가져온다. 


'좀 더 의지를 가지고 극복하려고 열심히 해봐!' 혹은 '힘을 내 봐!', '죽을 각오로 하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등의 멘트들이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는 의지까지도 사라졌을 정도로 많이 힘들거나, 더 짜낼 힘도 없거나, 죽을 각오가 아니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클 정도로 좌절스러운 상황일 수도 있다. 


자신의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것에 좌절하고 있는 자녀에 대해서 '괜찮아, 다음 시험에서 열심히 하면 되지 뭐!'라는 부모의 위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공감으로 느껴질 뿐이다. 최근 실연의 아픔으로 인해서 심한 슬픔에 빠진 친구에게 '더 좋은 남자를 만나면 되지!'라는 조언도 너무 빠른 제언일 가능성이 높다.  프로젝트가 좌절되어 실의에 빠져있는 구성원에게 '됐어! 툴툴 털어버리고 말아! 뭘 그런 걸 오래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도 시기상조인 경우가 많다. 


나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제언이 상대방에게도 적절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심사숙고하여 제언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나의 좋은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생각보다 마음이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표현이나 위로, 그리고 제언들이 소용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 충분한 사전 공감이나 감정적 교류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그 와중에도 나의 "긍정적 의도"를 수용하여 받아들여준다면 큰 문제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나의 부적절할 수도 있는 표현들에 대해 널리 양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는가?!


그럼, 어떻게 마음이 힘든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실수들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유사한 했던 나의 경험들을 떠올려 상대방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 속에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내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통은 내 개인적 경험의 몇 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난 후, 정확한 감정적 인지에 바탕을 두고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을 고려하여 위로의 표현을 하거나 제언을 한다면 상대방에게 충분한 위로와 힐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확한 감정적 상태에 대한 인지와 수용이 이루어진다면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열 마디 말보다도 위안을 줄 수도 있다. 혹은 많은 표현을 하지 않아도 '많이 힘들지?!'라는 한마디 말로 위로해주고자 하는 나의 진심이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스킬이나 수려한 표현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역지사지하는 나의 진지한 노력과 안타까운 나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표현이 중요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러한 과정이나 노력이 번거로운가? 그럼 적당한 수준에서 중간만 한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다면 적어도 실수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노력과 공들인 과정을 거친다면, 상대방과 당신은 더욱더 돈독하고 신뢰가 쌓일 것이며,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으로 서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두고두고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이자 자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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