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세상 이야기. 게임의 즐거움
최근 가장 핫한 이슈가 바로 "게임중독"이다. WHO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정의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로 온나라가 들썩인다.
그동안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 사는 것 같아 걱정이었던 부모들은 천군마마를 얻은 듯이 의기양양해졌으며, 관련 기사를 자녀들의 카톡으로 날려가면서 그동안의 행동들에 대한 정당성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에 게임을 즐기던 수많은 유저들이나 청소년들은 가뜩이나 어른들의 잔소리가 성가셨는데, 최근 경향으로 인하여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객관적인 견지에서 보면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TV나 신문기사에서, 그리고 기존의 게임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주장 속에서 적절하지 않은 논리가 숨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게임업계 또한 이들의 주장에서 비합리적인 부분들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게임 중독과 관련된 논의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참고로, 필자는 상담 및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약 10년에 가까운 정신과 생활 경험이 있으며, 특히 소아정신과 및 청소년 정신과에서 소아나 청소년의 심리평가와 진단, 치료 등을 수행하여 온 관련 분야의 정식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대인관계이며, 물질적인 것 중에는 술이 있다. 우리는 대인관계를 통해서 즐거움과 행복을 얻으며, 상호 교류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술의 경우에도 퇴근 후 맥주 한잔을 동료들과 나누며 하루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며, 어색한 사이의 긴장을 풀어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인간사 중 주요 행사에 술이 빠지는 것을 보았는가? 행복한 결혼식에서는 축배를 들며, 돌아가신 부모님 앞에서는 술 한잔을 따라놓고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이처럼 대인관계나 술의 경우, 인간의 만족과 즐거움의 핵심요소로서 개인에 따라 즐기는 정도가 차이는 있겠지만 뺄래야 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핵심요소들도 과하면 문제가 된다.
건강한 대인관계는 만족과 행복을 주지만 과도하게 대인관계에 의존하는 경우는 문제가 된다. 어떤 이는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있을 때에만 스스로의 가치와 존재감을 느끼고, 혼자 있을 때에는 강한 불안정감과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즉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중독되는 경우에는 이를 문제로 판단하며, 이에 해당하는 진단명은 "의존적 성격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이다.
또한 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과정에서 맥주 한잔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숙면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술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술이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하거나 혹은 초초함과 극도의 불안정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 또한 술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중독되는 경우로써, 이와 같은 경우를 알콜 의존 혹은 알콜 중독이라 칭한다.
이렇듯 세상 어떤 것이든 과한 수준으로 몰입을 하면 그것을 "중독"이라고 칭한다. 이렇게 따지면 수많은 중독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젊은 여성분들 중에는 커피 중독이나 케이크 중독이 있으며, soaf drama라는 표현은 연속극에 자꾸 빠져드는 중년여성들을 빗대어 만들어진 표현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말이면 가족을 다 버리고 낚시터나 골프를 치러가는 아저씨들도 과히 중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중독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쇼핑중독, 매운음식 중독, 면중독, 고기중독, 속도중독(과도하게 스피드를 즐기는 운전자들), 일중독 등 모든 세상사에 중독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가능할 정도이다. 즉 어떤 것이든 너무 과하게 몰입하여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우리가 '중독'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의를 요하거나 경계를 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 되돌이켜보니, 나도 중독현상이 있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나를 지칭하여 '딸바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딸'의 존재에 중독된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딸이 원하면 딸을 학교에 데려주느라고 당당히 회사에 늦게 출근하기도 하고, 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딸이 들어올 때까지 자는 척하면서 기다리다가 딸이 안전하게 들어온 것을 확인해야 맘 편히 잠이 든다. 그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는 다음 문제다! 이 정도면 중독 아닌가?!
그런데 마약은 좀 다른 문제이다. 마약은 순기능은 거의 없는 반면에 손대는 것만으로도 문제로 취급받는다.
물론 마약에도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순기능에 비하여 문제나 역기능이 너무 과하기 때문에 엄격한 통제와 관리가 필요한 문제이다. 병원에서 수술할 때의 마취제가 그 예이며, 너무 고통스러울 때 마약성분이 포함된 진통제를 통해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켜준다.
이렇듯 마약은 아주 제한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 자체가 제한되고, 생산을 하거나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이는 정신과 신체를 황폐화하고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엄격하게 법으로 통제하고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최근의 언론보도나 여론 자체가 게임중독을 마약중독과 빗대어 표현하는 일이 많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서 마약과 같은 종류의 인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적절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비유와 접근이다.
게임은 손대기만 해도 문제인 것이 아니다. 충분한 순기능과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활동이며,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이고 당당하게 즐겨도 되는 활동이다. 그리고 관련 산업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원을 할 뿐 아니라 실제로 경제적인 기여도도 큰, 현재와 미래의 주요 산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왜 이런 건강하고 건설적인 측면이 충분히 많은 게임을 "막장 중의 막장인 마약"과 같이 나란히 언급하는가? 이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접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물론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변화나 신문명이 도입될 때에는 당연히 반대세력도 있으며, 그로 인한 기득권의 피해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때 그것이 가지는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불편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논란에 대한 게임업계의 반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중독에 대해서 '게임은 중독현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옳지 않다. 차라리 '게임을 너무 심하게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게임중독(즉 문제 행동과 증상)이 될 수도 있다'라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낫다. 이렇게 접근하는 경우 게임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게임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경우"에 제한하여 문제를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일부 극단적인 경우를 인정해 버림으로써, 게임 전체가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오히려 '게임은 중독이 아니다'라고 말하여 '중독 사례가 있잖아!'라고 더 큰 목소리로, 그리고 계속해서 반대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이어가게 하지 마라. 이런 것을 소위 '낚인다'라고 하는 것이다. 게임이 중독이냐, 아니냐가 본질이 아니다. 인간사 어떤 이슈에도 나타나는 "중독"현상을 피하려다가 전체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임 중독과 마약 중독을 한문장에 넣고 비유하는 것을 가만히 두면 사람들은 게임이 마약과 유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게임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인식하도록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맞다.
게임은 여러가지 순기능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Fun'이다. 우선은 너무 재미있다!! 재미있고 즐거운데 크게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건강을 심하게 해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래도 오래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따지만 술이 더 해로운가, 아니면 게임이 더 해로운가 진지하게 따져보라. 투입금액 대비 몸이나 정신에 오는 피해를 따져보라. 계산은 명확하다. 게임이 훨씬 더 건강하다.
심지어는 'e-스포츠'라는 새로운 분야가 만들어질 정도이며,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이지 않은가?! 그리고 관련산업 종사자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들의 생계는 물론 그들의 자부심과 기술적 측면에서의 기여도를 생각해 보라. 예전에는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사람들을 '산업역군'이라 칭송하였는데, 가히 게임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신-산업역군'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 것이다.
남들이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거기에 낚여서' 문제점만을 계속 얘기하거나 문제점에 대해서만 맞대응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차라리 문제중심의 맞대응을 하느라고 더 큰 소리가 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이롭다. 대신에 분명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더 좋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들이 진행하는 온라인 학습과제를 개발하여 학생들이 더욱 공부에 몰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여 개발하라. 사교육비를 감소시키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게임 반대자들을 타겟으로 하여 개발한 아주 재미있는 무료 게임을 배포하라. 그래서 게임 반대 집회에 참가하면서도 서로 그 게임의 점수를 비교하도록 하라.
핵심적 본질을 비껴가는 논란에 낚이지 말고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대인과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이다. 마약과 같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라. 그래도 계속 중독을 걸고넘어지면, 모든 담배회사나 주류회사들이 하듯이 중독문제를 해결할 연구소와 치유 재단을 설립하면 된다. 계속해서 마약중독과 비교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만 안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소위 '옛날 사람'이기는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편에 속한다.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대유행을 하던 'Prince'라는 게임을 완전정복하였으며,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나왔을 때에는 '정말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있고 신기한 게임들이 나올까'라는 기대를 할 정도로 놀라운 경험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은 쓰지도 않는 표현이지만 소위 '오락실'에서 '버블버블'이라는 추억의 게임을 100판까지 모두 정복하고(요즘 말로, 만렙을 하고) 친구들과 축하주를 나누었으며, '테트리스'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뒤에 서서 구경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 큰 사이즈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롤게임 등은 못하지만, 지금도 모-아케이드 게임에서는 글로벌 3등 안에 드는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게임중독'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게임을 즐긴다'고 표현한다. 업무 상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많으면 좀 더 많은 시간을 게임을 하기는 하지만 이는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풀어야 할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지 '게임에 중독'되는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으로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줄에 놓고 유사한 것처럼 비유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하다. 하지만 이 글은 개인적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며, 관련 분야 전문가로서 진지하고 객관적 견지에서 쓴 것이다. 물론 우리 고객사 중에도 게임회사들이 있다. 이나저나 성격 상 고객사에 아부할 성격도 아니며, 아부한다고 써주고 아부를 안 한다고 내치는 회사에게는 내 전문성을 기반으로 헌신할 생각도 없다.
다만 게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기여하며, 각박한 사회에서 쉽게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부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왜 이런 비합리적인 논리와 비유에 근거하여 매도당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개인 상담이나 리더십 코칭 중에 과도하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소확행'중 하나로 당당하게 게임을 권한다. 이런 게임이 가지는 고유한 긍정적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게임을 통해서 하루의 긴장을 풀기도 하고,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비난받거나 문제있는 사람들로 취급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특별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즐길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리고 분명한 순기능과 고유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것으로 부당하게 여겨지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서 게임 관련된 이슈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고 건강한 해결책과 건설적인 대안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P.S. 현재 준비 중인 글들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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