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은

물은 여전히 흐른다. 길을 잃은 적은 있지만, 말라 버린 적은 없다.

by 최소윤소장




나는 타인의 감정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는 사람이었다.


말보다 표정, 말투보다 분위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 감각이 늘 살아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갈등이 일어날 법한 순간엔 한 발 물러섰고, 누군가 상처받지 않도록 나부터 조심했다.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눈치가 빠르다’는 평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말들이 내 마음의 고요를 보장해주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점점 더 나를 감추고,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수(水)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감정에 민감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언어보다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

흐름을 읽고, 고집보단 유연함을 중시하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깊어지는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살도록 허락해주지 않았다.


나는 늘 ‘분명한 사람’, ‘논리적인 사람’, ‘자기표현이 확실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받았다.

자꾸만 ‘금(金)’처럼 판단하고, ‘목(木)’처럼 나서고, ‘화(火)’처럼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며 살아야 했다.


그건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남들 눈엔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자주 무너졌고, 번 아웃 되었고, 이유 모를 불안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힘들었다.


나는 그동안 '나답지 않게' 살고 있었다.
내가 타고난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 방향은 어쩌면 사회가 정해준 성공의 틀일 수도 있고, 내가 사랑받기 위해 선택했던 생존의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너무 오래되자,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결국, 몸이 아프고 마음이 버거워졌을 때에서야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 질문에서 이 글이 시작되었다.


이 글은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흐름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이야기다.


사주는 말해준다.

우리가 어떤 에너지로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 에너지가 언제,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는지를.


그러나 사주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다.

그건 방향이고, 흐름이고, 본성이다.


우리는 그 흐름을 무시하고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글은 당신이 타고난 기질(사주)과 지금의 삶에서 실제로 쓰고 있는 기질(후천적 성향)이 얼마나 맞물려 있는지, 혹은 어긋나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덜 아프게 살 수 있다. 더 단단하게, 더 편안하게, 그리고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 너무 많은 기준이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글은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가려는 안내서다.


지금 당신 안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자.

당신 안의 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길을 잃은 적은 있지만, 말라버린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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