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여전히 흐른다. 길을 잃은 적은 있지만, 말라 버린 적은 없다.
나는 타인의 감정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는 사람이었다.
말보다 표정, 말투보다 분위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 감각이 늘 살아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갈등이 일어날 법한 순간엔 한 발 물러섰고, 누군가 상처받지 않도록 나부터 조심했다.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눈치가 빠르다’는 평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말들이 내 마음의 고요를 보장해주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점점 더 나를 감추고,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수(水)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감정에 민감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언어보다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
흐름을 읽고, 고집보단 유연함을 중시하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깊어지는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살도록 허락해주지 않았다.
나는 늘 ‘분명한 사람’, ‘논리적인 사람’, ‘자기표현이 확실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받았다.
자꾸만 ‘금(金)’처럼 판단하고, ‘목(木)’처럼 나서고, ‘화(火)’처럼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며 살아야 했다.
그건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남들 눈엔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자주 무너졌고, 번 아웃 되었고, 이유 모를 불안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힘들었다.
나는 그동안 '나답지 않게' 살고 있었다.
내가 타고난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 방향은 어쩌면 사회가 정해준 성공의 틀일 수도 있고, 내가 사랑받기 위해 선택했던 생존의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너무 오래되자,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결국, 몸이 아프고 마음이 버거워졌을 때에서야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 질문에서 이 글이 시작되었다.
이 글은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흐름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이야기다.
사주는 말해준다.
우리가 어떤 에너지로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 에너지가 언제,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는지를.
그러나 사주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다.
그건 방향이고, 흐름이고, 본성이다.
우리는 그 흐름을 무시하고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글은 당신이 타고난 기질(사주)과 지금의 삶에서 실제로 쓰고 있는 기질(후천적 성향)이 얼마나 맞물려 있는지, 혹은 어긋나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덜 아프게 살 수 있다. 더 단단하게, 더 편안하게, 그리고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 너무 많은 기준이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글은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가려는 안내서다.
지금 당신 안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자.
당신 안의 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길을 잃은 적은 있지만, 말라버린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