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마주하며 일했던 날들
출근길, 항상 장례식장을 지나가야 한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장례차가 있는 날이 많았고,
어느 순간 그날의 나도 장례차 앞에 서 있다.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는 도하의 마지막 모습도 보인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매번 걸음이 느려진다.
눈시울이 따뜻해지려고 하면 애써 걸음을 빨리해 나를 재촉했다.
도하가 검사를 기다리던 복도,
퇴근할 때 응급실 앞에 앉아 기다리던 의자,
응급실 진료 할 때마다 누웠던 침대...
그 모든 곳에 도하가 보였다.
병원 복도를 다니다 보면 젊은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 뒷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다시 돌아올 리 없잖아.'
'언제쯤 도하와의 연결 고리는 끊어질까?'
'그 기억의 색감이 흐려지기라도 하면 좋겠다.'
하필이면 나는 응급실 간호사다.
"심폐소생술 환자예요.
오토바이 사고고요. 30분 정도 지났어요. 의식 맥박 없습니다."
수없이 듣던 말이지만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지며 손도 떨렸다.
"네, 심폐소생실로 갈게요."
응급실에서는 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난다.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에 괜찮은 척 일하지만
심폐소생술은 마음이 너무 버겁다.
'심장이 멈추면 이 환자는 이 공간을 볼 수 있을까?'
'도하도 여기에 머물렀다 갔을까?'
더 감당하기 힘든 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온 가족들이다.
가족들의 반응은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오늘 아침에 잘 다녀온다고 인사해 놓고 왜 여기로 온 거야?"라며 원망했고
"너 없으면 나 혼자 애들이랑 어떻게 살라고 이러는 거야."라며 본인을 걱정하고
또 어떤 이는
"너무 불쌍하게 산 우리 엄마 사랑해. 그리고 너무 고마웠어...."라고 뒤늦은 진심을 표현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죽음보다 암으로 준비할 시간이 있는 죽음이 가족에게 더 나은 것 같다.'라고......
그러다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다시 간호사로 복귀하기 위한 재활의 시간이 두 달 정도 필요했다.
"선생님, 사체가 많이 훼손되었다고 해요. 그냥 저희가 알아서 보고 올게요."
"주사만 챙겨 주세요. 심폐소생실에는 안 들어오셔도 됩니다."
"바깥 환자가 많으니 간호사 데스크 지켜주세요."
'괜찮아'라고 말하고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살기 위해 그 배려를 받았다.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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