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 입을 점퍼
퇴근길, 밀면집에서 밀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그 집은 왜 배달이 안 되는 거지?'
오늘 새벽 출근길 일찍 깼다며 시어머니께서 거실로 나오셨다.
"잘 다녀와. 안 바빠야 할 텐데..."
"운전 조심하고..."
빨간 눈, 부은 얼굴, 잠긴 목소리...
그냥 방에 계셔도 되는데,
새벽같이 출근하는 며느리가 마음에 쓰이셨던 것 같다.
하루 종일 그 얼굴이 떠올랐다.
'그 모습으로 애들 잘 챙겨 주실 수 있으려나?'
'뭘 드시긴 하시나?'
남편 사별 후 우린 동행하기로 했고,
(거의 내가 설득한 것이지만....)
장례 후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을 불쌍하게 키우지 않겠다고 같이 맹세했었다.
그 약속은 우리에게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 되었다.
퇴근하면서 울다 지쳐 돌아온 나를 보는 어머니도,
아침에 퉁퉁 부은 눈을 보는 나도,
왜 울었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웃기도 한다.
약속하지 않았지만 남편 이야기는 금기어인 것 같다.
한 번씩 이현이가 불쑥 아빠 이야기를 꺼내면,
이준이는 눈빛으로 ‘하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곤 했다.
서로 지켜주며 애도의 시간을 갖는 중인 거다.
나도 많이 힘들었지만,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그 힘듦이 더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을 보냈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마음에 묻었으리라...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밀면을 찾으러 간다.
이걸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냥 식탁에 두고 방으로 들어간다.
"밀면 사 왔어요~ 오늘 마치고 직원들이랑 밀면 먹었거든요. 생각나서 포장해 왔어요."
한참 있다 나와보면 반 그릇 정도 남은 밀면이 식탁 위에 있다.
'그거라도 드셔야 살지....'
마음을 쓸어내린다.
이렇게 한 번씩 카스텔라, 밀면, 시장 반찬들을 식탁에 올려두곤 했다.
아이를 함께 키워주시는 감사의 마음이자 애잔한 마음으로..
도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도하는 퇴근 시간 맞춰 나에게 전화 했다.
"일 끝나고 병실에 들렀다 가면 안 돼?
그냥 집에 가면, 내가 조금 섭섭해서 그래... 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 밤 10신데 집에 가서 애들 챙기고, 집안일도 해야 해. 피곤해서 오늘은 그냥 들어갈게."
"그래..... 내일은 꼭 와..."
다음날,
도하 곁에서 우연히 내 통화를 들은 어머니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어제 왔다 가지 그랬니? 힘들어도 좀 참고 와주지...."
가슴 아픈 부탁이었지만,
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어머니께서도 사는 모습을 다 봐서 아시겠지만,
저는 지금 사랑해서 돌보는 게 아니라,
제 도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더는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아 주세요."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더 이상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오죽하셨을까.
죄송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땐 정말, 제가 너무 지쳐 있었어요.'
이현이가 할머니 방에서 놀고 있었다.
우연히 장 안에 든 아빠 점퍼를 발견하고는
"이거 아빠 옷이네? 아빠 냄새날까?"
웃으며 옷에 얼굴을 비볐다.
지난겨울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러 가면서 어머니께 준 옷이었다.
"엄마, 이제 이 옷 안 입을 것 같아. 사이즈 작으니깐 엄마 입어도 돼."
살이 빠지고 산, 작은 사이즈의 겨울 점퍼를 건네며 도하가 말했다.
"어, 그래. 입을게."
눈물을 꾹 참고 받아 두었던 점퍼는,
겨울 내내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옷장 안에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 그 옷 아빠가 할머니 줬어요?"
이현이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아니, 아빠가 할머니 옷장에 넣어 놨네."
"응...."
잠시 멈칫하더니,
"왜 넣어놨지?"
이현이는 중얼거리듯 말하며 조용히 방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어머니, 그 옷 보고 마음 아프시면 그냥 다른 사람 줘요."
"아니 이걸 어떻게 다른 사람 주니?....."
나는 억지로 짜내는 눈물이 싫어서, 그 옷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애들 크면 입게 줄 거야. 내가 안 보이게 넣어둘게."
하셨다.
본인은 입지 못할 옷이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아들을 잃은 슬픔은 그 무게가 다르다.
물건은 버릴 수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비워지는 게 아니란 걸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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