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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죽은 사람에게 맞바람조차 필 수 없었다.

진짜 이별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by 새벽달풀

그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나며 겨우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사진의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살다 보면 실패도, 병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잠시 후, 다른 여자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늘 사진 찍기를 싫어하던 그가,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

그리고는, 그 사진에 정성스레 이름까지 붙여 남겨두었다.


'혹시, 내가 본인을 못 잊고 너무 힘들어할까 봐,

정 떼려고 일부러 저장해 두었나?'

'그 당시 나에게 잘해줬던 건 사랑이 아니라 미안해서였을까?'

'그가 그런 선택을 한건 내 탓일 수도 있을까?'

이해하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하가 그래서는 안 됐다.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 한들,

암 투병 중 호스피스를 권유받던 그때는 그 사진을 지웠어야 했다.


'사랑받지 못한 건, 내가 스스로를 아끼지 못해서였을까.'

이 생각이 마음에 남았다.


그날 이후,

나의 초점은 타인에서 나로 옮겨오고 있었다.

인생이 마지막으로 내게 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믿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정리되지 않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란

평범한 가정에서 아이들 예쁘게 잘 키우며

사랑받고 사랑주며 사는 것이었는데,

과한 욕심이었을까?


'너는 같이 살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 난 네가 없는데 못 할 것도 없지?'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너는 없는데 아이 둘은 남았으니, 원하던 대로 된 건가.

씁쓸한 생각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맞바람조차 되지 않는,

우리는 유치한 복수마저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도하와의 관계는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났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나에게

사진 한 장이, 그 끝을 명확히 찍어주었다.

도하와도, 그의 가족과도.

정말로, 작별해야겠다.

이제는,

나를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이 나라는 걸 안다.


너는 이 세상에 없고

살아있는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인생을 나답게 살기로 선택했다.


이젠, 진짜 이별을 시작한다.

이제는, 내 인생으로 대답할 차례다.



다음 이야기는 토요일에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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