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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 엄마, 잘 보고 조심하세요.

아빠를 사별한 초4 이준이의 속마음

by 새벽달풀

아이들은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까지만 안다.

그 너머의 진실은, 지금은 아직 모르는 게 나을 이야기들이다.


혼자만 복잡한 생각 속에 빠져 있다 보니,

문득 아이의 감정이 궁금해졌다.

"아빠가 안 계신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너한텐 뭐가 제일 불편해?"

초4 이준에게 물었다.

아빠가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거나, 든든했던 기억을 그리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그냥... 아빠가 없다고 말하는 게 싫어요."

순간,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기로 했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대답을 안 하면 되지 않을까?"

이준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답을 안 할 이유도 없잖아요."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없어요’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마음속에 덮어뒀던 빈자리가 더 도드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른 아빠라도 있으면 그게 더 나을까?"

이준이는 멍한 표정으로 조용히 답했다.

"그 다른 아빠가 괜찮은 사람이라면요."

혼자 생각이 많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의 기준은 뭘까?'

어른과 다르겠지.

"괜찮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야?"


내 질문에 좋은 답이 생각난 듯

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

"음... 엄마랑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


그 말은,

나 혼자만의 인연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만나야 할 관계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했다.


속마음을 보여주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사람에게 아이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건 괜찮니?"

"엄마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죠."

"만약 있다면... 어린 여동생이면 좋겠어요."

여동생이면 좋겠다는 말 속엔,

아직 만나지도 않은 그 존재를 받아들이겠다는 아이의 조심스런 용기가 스며 있었다.


'여동생?'

나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일처럼 쉽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럼 우리 좋은 새아빠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기다려 볼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때, 이준이가 갑자기 말을 이었다.

"혹시나 엄마, 누굴 만나면 잘 보고 조심하세요."

"응? 무슨 말이야?"

"엄마가 좋아서 속은 별로인데 좋은 사람처럼 행동할 수도 있잖아요."

마음 어딘가가 세게 쿡 찔린 느낌이 들었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그래 조심하고 잘 봐야지.'


혹시 모를 상대를 생각하다 문득,

아빠에 대한 마음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럼 아빠가 속상하지 않겠어?"

이준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아빠라면 엄마랑 우리가 행복하면 그걸로 좋아해 주실 거예요."

그 말 끝에 '엄마 괜찮아요.'의 의미를 담은 듯한 웃음을 건넸다.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그래 누굴 만난다면 지금보다 행복해야 한다.'

이준이의 말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졌다.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는 된 걸까.

언젠가… 그런 날이 내게도 찾아올까.



다음 이야기는 6/18(수) 저녁 8시에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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