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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 이혼이에요? 사별이에요? 아이는요?

사별 후, 재혼을 고민하며 마주한 나의 진짜 마음

by 새벽달풀

엄마는 딸의 외로움을 그냥 두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딸~ 엄마가 잘 아는 목사님께서 괜찮은 청년이 있다는데 한번 만나볼래?"

"괜찮은 청년 나이는요?"

"아, 다시 알아보고 연락 줄게."


다음날,

"어제 그 사람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되겠더라."

"엄마 친구가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줬는데

너랑 3살 차이에 학교 선생님이래."

"그 선생님... 이혼이에요, 사별이에요? 아이는요?"

문득, 이제는 잘 생겼는지 어디 사는지 등의 조건은 중요하지 않게 된 느낌이었다.

이혼, 사별, 아니면 혼기를 놓친 중년싱글인지... 아이는 몇이고 누가 키우는지가 프로필처럼 따라다녔다.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사별자라면…

하지만 정작 나는, 마치 이혼처럼 떠난 사람을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그 사람을 여전히 그리워한다면, 내가 그 감정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왠지 내가 손해 보는 쪽이 될 것 같았다.


이혼이라면

이혼 후에도 아이 때문에 전 배우자와 계속 연락해야 한다.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온갖 복잡한 감정이 직진하고 싶은 마음을 꺾고 있었다.


그렇다고 덜컥 아무나 만나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엄마의 소개와 나의 조건 사이에서 한참을 맴돌던 어느 날,


내 안에서 질문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걸까?

아니, 나는... 진짜로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걸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어쩌면

내가 진짜로 뭘 원하는지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사람들은 나를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혼보다 사별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재혼을 하면 행복할까?

오히려 처음보다 더 힘든 결혼 생활을 준비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재혼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이전 배우자의 부족했던 점만 채워지면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랬다.


부족한 전 배우자도 좋은 점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 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을 테니까.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원하는 배우자를 상상하며 구체적으로 적어보았다.

'술이랑 담배는 안 하는 사람'

이 항목은 초혼때와 같음.

'건강한 사람, 그리고 건강 관리를 스스로 하는 사람'

남편이 아파서 사별한 나에게 중요한 항목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져도 믿을 수 있는 사람'

한 번 살아보니 신뢰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등등....

그리고

초혼에 있을 수 없는 항목이 있다.

'이준, 이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하나 둘 적다 보니 21가지나 적혀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시 사랑해 볼 용기가 날 것 같았다.


"저 이런 사람 만나고 싶어요." 라며 적은 종이를 내밀면

"너 다른 사람 만날 생각 없지?"

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았다.

그리고 "너는 그런 사람이니?"

라는 비아냥이 돌아올 것 같기도 했다.


재혼 가정의 현실은 복잡하다.

새엄마, 새아빠는 커서 만난 아이의 부모 역할을 갑자기 맡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서 현재의 나이만큼 살아온 시간은 지워진 채

그 긴 시간을 메우기 위한 낯선 노력들이 시작된다.


만약 내가 10살 딸아이의 엄마가 된다면

잃어버린 기억을 하나씩 되짚어가는 엄마처럼

그 아이가 어릴 때 어땠고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기질인지,

그걸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알아가야 한다.

상대의 아이를 내 자식보다 더 챙기고 마음 쓸 각오,

과연 나는 되어 있을까?


나의 상처를 받아달라고 하기 전에,

상대의 상처가 무엇이고, 내가 안아줄 수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얼마전까만 해도 내 안에 덜 아문 상처들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갈 길이 멀게 느껴졌다.


지금처럼 이준, 이현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삶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혼자 아이에게 집중하는 삶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평범한 가정을 보며 자라게 해주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화해하고,

때로는 투닥거리지만 결국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일상

그런 풍경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도 가능하겠다는 희망이 들었다.


남편을 두 번 잃을 수는 없다.

아이 역시, 같은 상처를 다시 겪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잘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렸다.

그 무게 속에서는 어떤 시작도 감히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만나보기만이라도 하자고 결심했다.

더는 단정하지 않고, 조급하지도 않기로 했다.

천천히, 그 사람과 삶을 함께 걸을 수 있을지 지켜보기로 했다.


어쩌면 조금씩 내 중심을 잡아가고 있었다.


결국, 조건을 채워줄 사람보다 중요한 건

서로의 결핍을 다그치지 않는 사람,

상처를 먼저 들추지 않고,

그 위에 새 살이 돋을 시간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나겠다는 선택은,

결국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를 먼저 마주할 수 있어야,

언젠가 진심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다음 이야기는 6/22(일) 저녁 8시에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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