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1화 | 익숙하지 않은 다정함

서툰 시작에도 설렘은 온다.

by 새벽달풀

친구로부터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았다.

"말해 뒀으니까 편한 시간에 연락해 봐."

"이혼한 친구인데 너랑 잘 맞을 것 같아."


스크린 속 전화번호가 낯설게 느껴졌다.

저장 버튼을 누르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현재..."

사람과 사람이 엮인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금의 현실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오자 주저하는 내 모습이 작아 보여 생각의 사슬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동안 고민했던 만큼의 시간을 믿자.

고민 그만!!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제일 먼저 한 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한참 사진 속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궁금함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어떤 이유로 이혼하게 되었을까?

어떤 사연으로 나와 연결되었을까?

나와 잘 맞는 사람일까?

궁금함이 설렘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을 때쯤 용기 내어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서윤입니다."

……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킥킥 웃으며 몸을 말았다.

괜히 얼굴까지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네, 저는 이현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거의 바로 답장이 왔지만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20대의 만남과 마음은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복잡한 생각들이 자꾸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는 것 정도."였다.

여유를 가지고 태연해 보이려고 애를 쓰며 대화를 이어갔다.

간단한 정보 교환과 만남 약속을 정했다.


그는 이혼 후 5살 딸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만 만날 수 있다.


처음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평소 청바지에 티셔츠가 익숙한 나는, 원피스에 구두를 꺼내 신으며 어색함을 느꼈다.

첫인상을 예쁘게 남기고 싶으면서도 너무 꾸민 느낌은 피하고 싶었다.

한때는 자연스러웠던 복장이, 지금은 낯설고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필이면, 비가 오고 있다.

조용히 내리던 빗방울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고대기로 말아 손질한 머리가 흐트러질까 마음이 쓰였다.

원피스에 물이 튀지 않으려는 어정쩡한 내 걸음에 웃음이 났다.

약속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사진 속 그가 앉아 있었다.

왠지 낯섦보단 익숙함이 먼저 느껴졌다.

'사진을 너무 오래 봤나?...'

몸에 힘이 들어갔지만, 어느새 마음은 조용히 풀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에 긴장이 덜 풀린 웃음으로 답하고 말았다.

최근 이렇게 긴장한 적이 있었던가?

그는 깔끔한 외모에 총명한 인상, 예쁜 눈을 가진 남성이었다.

그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그 사람과 마주한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중요한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서로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건 분명,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우리는 자리를 옮겨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가 우산을 씌워줬다.

영화 속 아주 흔한 장면이다.

그 흔한 장면이 왜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정함...


아이가 있어 자주 만날 수 없지만 다음 약속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 후 점심시간과 마치는 시간마다 전화통화를 했고

자기 전 꼭 인사를 하고 잠들었다.

아이와의 일상, 일터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하루의 루틴 속에 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연락할 누군가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의 선이

어느새 조용히 넘어가고 있었다.

평범한 하루를 나누는 것이 따뜻해서,

함께하고 싶다는 더 큰 욕심이 자라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6/25(수) 저녁 8시에 이어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킷(♥)과 구독은 다음 글을 쓰는 힘이 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화 | 이혼이에요? 사별이에요? 아이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