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4화 | 다시 혼자가 된 밤, 그의 번호가 뭐였지?

후회하지 않을 관계를 위해서

by 새벽달풀

그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날 이후,

며칠이 지났다.

처음엔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도...


그의 전화번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 흔적 하나 찾으려고 이름을 검색했다.

남아 있는 건, 학교 이름 하나뿐이었다.


카톡 차단했던 걸 취소해 본다.

프로필 사진은 그대로다.

잘 지내는 거겠지.

나만 이렇게 오래 힘든 걸까.

망설임 끝에 다시 차단을 눌렀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머리로 겨우 붙잡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를 더 쉽게 잊을 수 있을까?'

'폰 번호를 괜히 지웠나 봐.'

'그냥 친구처럼 지낼걸...'

'동화처럼 모든 조건을 갖춘 멋진 왕자님이 나보고 사귀자'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흔 넘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다시, 아이들과 나만 남았다.

겉으론 예전으로 돌아간 듯하지만,

내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더 두려워졌고

그와의 이별 이후, 생각이 많아져 쉽게 지치기 일쑤였다.


혹시 모르니까,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주변에 말을 꺼내뒀다.

그 말을 해놓고도,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언니, 혹시 언니보다 8살 어린 남자도 괜찮아?"

"그 사람 싱글이야. 언니 같은 스타일 좋아한대."

동생의 눈빛이 반짝인다.

내 눈보다 훨씬 더 기대에 차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한 번 만나볼까?' 했을지도 모른다.
가볍게 한 번쯤 만나보고,

마음이 가는 대로 흘러가 보자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건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아닌, 내 아이들까지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왠지 나랑은 어울릴 리 없을 것 같아서.

"아이, 미안하지만 사양할게."

"난, 나랑 만나는 사람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어봐 준 그 아이의 마음이 따뜻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게 분명한 기준 하나가 생겼다.

결혼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

그리고 서로에게 후회 없는 선택이어야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마음에 빚지지 않는 관계여야 하니까.


결혼은 도피처가 아니라는 걸,

함께 나아가기 위한 시작이라는 걸

믿고 싶었다.


문득, 에라스뮈스의 말이 떠올랐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힘들게 하고,

깎여 가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결혼 생활일지 모른다.


나의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상대도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워가며 함께 걷는 여정 속에서,

혼자일 땐 몰랐던 나를, 함께 걸으며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거겠지.


오늘도, 사춘기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 본다.


'왕자님, 어디 계시나요?'



다음 이야기는 7/5(토) 저녁 8시에 이어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킷(♥)과 구독은 다음 글을 쓰는 힘이 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3화 | 사랑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