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가족, 그 모든 허락을 향한 시작
저녁 퇴근길엔 언제부터인지 늘 민결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모든 여정이 시작된 주차장...
밤 근무 전 30분, 저녁 근무 후 30분 짬짬이 데이트를 이어갔다.
그는 간단한 과일과 차를 사 오기도 했고,
차 안에서 잠시 대화 후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나와 있는 불편한 마음을 이해받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냥 잠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데이트 정도로 만족하는 게 좋았을까?
우린 간절히 그 이상을 향해 함께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함께 지나야 할 과정들이 있음을 잘 안다.
두 번은 실패할 수 없다는 결혼의 무게,
아이들과 부모님의 허락...
생각하면 숨이 막히듯 가슴 한편이 묵직해왔다.
겁이 나서 두 손을 꼭 잡고
발을 떼지 못하고 출발선에 서있는 두 사람 같았다.
매일 짧은 데이트로 아쉬운 날들을 보내던 우리는,
그 부족함을 전화와 카톡으로 채워가며 서로를 알아가기에 힘썼다.
달달한 사랑이라기보다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한 확인 작업 같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며 점점 서로에 대한 확신이 생겨가던 무렵이었다.
"정말 이준이, 이현이 아빠가 되어 줄 수 있겠어? 쉽지 않을 텐데..."
"지금이라도 자신이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해도 돼."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라 두려웠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 해도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꼭 확인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이었지만
그는 잠시 멈칫하다 표정이 진중해졌다.
조용히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힘들겠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자신 없다고, 힘들다고, 무서워서 너를 포기한다면
그게 더 큰 후회가 될 것 같아.
그래서 그렇게는 하기 싫어."
민결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가까지 따뜻해졌다.
"부족하지만 노력할 거야.
그리고 너랑 함께하고 싶어.
편한 길이 아니라는 것 알아.
하지만 편하게 사는 게 꼭 좋은 삶은 아닌 것 같아.
내가 이현이, 이준이 아빠가 될게.
그리고 너의 옆자리를 지킬게."
어떤 사랑 고백보다도 고맙고 따뜻했다.
재혼은 힘들고 성공하기 어렵다는 거리감,
그 사람과 만난 시간이 짧아 불안했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다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미래를 함께하기로 했다.
이 순간부터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침 이때,
1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오시는 부모님이 귀국하셨다.
한국에 머무시는 시간은 한 달...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한 달...
목표가 생겼다.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한 달 안에 허락을 받는 것.
이번에 안 되면 다시 들어오실 때까지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부모님 없이 결혼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다시는 없을 거란 생각에 나는 더 조급해졌다.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요?"
"음... 우리 딸 고생 안 시키는 사람, 그리고 내 새끼들 같이 잘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지."
의외로 엄마의 기준은 단순했다.
단순해 보이는 대답이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고생을 안 시킨다는 그 말속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까?
이준이, 이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필요할까?
첫 번째 결혼을 부모님의 반대 속에 했기에, 이번만큼은 축복 속에 시작하고 싶었다.
첫 번째 결혼의 기억은 나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럼 나보고 결혼을 하지 말란 말씀이에요?'라고 생각하게 했던 엄마의 높은 기준...
결혼해서 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며 힘들었던 시간과 그 무게만큼, 엄마의 높은 기대치가 조금은 줄었을까?
제발... 그랬으면...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 변치 않는 하나의 믿음은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행복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부모님이라고...
'어쩌면 내가 혼자 지내는 것보다 누구라도 함께 한다면 좋아하실지도 몰라.'
용기를 내어 엄마의 기분 좋아 보일 때,
최대한 가볍게 말씀드렸다.
"엄마, 제가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요. 일단 한번 만나주세요."
엄마는 나를 보고 찡끗 웃으셨다.
"그래 그러자. 그런데 애들은 만나봤니?"
한국에서의 시간이 짧으니 우선 보자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의 질문이었다.
"아니요, 아직이요..."
"애들을 봐야 애들 아빠가 될 수 있을지 알지 않겠니?
애들 먼저 만나는 게 순서가 아닐까?"
다행히 생각보다 부드러운 반응이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직업은 뭐니?'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니?'
'이준이 이현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아이가 있어?'
등을 차근차근 물으셨다.
나는 하나하나 답하면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처음 결혼 때의 기준과 변하지 않으신 걸까?
시간은 한 달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 안에 아이들을 만나 친해지고
부모님께 인사까지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이제야 셋이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진 것 같다.
놀러 갈 곳을 함께 정하고 새로운 곳에 가고 맛있는 음식은 먹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하는데...
이준이, 이현이에게 그의 존재를 아직 말하지 못했다.
혹시나 이 일이 상처가 되진 않을까?
아빠 생각이 나서 아프진 않을까?
한없이 복잡한 마음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맴돌기만 했다.
고민하는 동안도 하루하루가 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슴이 조여왔다.
그러다가도 부드러운 그의 눈빛을 보면 내 불안감이 들킬까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졌다.
이런 상황을 그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은데...
예비 시부모님은 아들이 좋다면 좋다는 입장이신데
우리 집만 유별난 것 같아 미안했다.
한 달,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해내야 한다.
나는 아직 첫 발조차 떼지 못한 채,
시간만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