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철학 ⑫] 건강이라는 절대적 우선순위

Safety First

by 자아

기관실에서 작업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친다. "Safety First." 하지만 2026년 3월 21일, 예상치 못한 알람은 그 단단했던 주문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급박한 정비 상황 속에서 평소 철저히 지키던 작업 허가서(Work permit)와 위험성 평가(Risk assessment)는 생략되었고, 그 찰나의 빈틈을 타 고압 공기가 내 오른쪽 눈을 강타했다.

엔진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아파할 시간조차 없었다. "나중에 좋아지겠지"라며 버텼던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흐려진 시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사고는 나에게 단순한 부상을 넘어, 인생의 로그북을 완전히 새로 쓰게 만들었다.


1. 0순위의 재발견: 건강이 없으면 항해도 없다

그동안 나는 엔지니어로서 배의 안녕과 성취, 그리고 개인으로서 나의 보금자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에 몰두해 왔다. 하지만 시야가 흐려진 그 찰나, 내가 쫓던 모든 숫자의 가치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건강은 인생이라는 배를 움직이는 엔진 그 자체였다. 엔진이 멈춘 배는 화물이 아무리 비싸고 목적지가 화려해도 표류할 뿐이다. 부상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나는 이 자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내 인생에서 건강은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제1순위로 기록될 것이다.


2. 고립의 심연: 아플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망망대해 위라는 특수한 공간은 신체적 고통에 외로움이라는 무게를 더한다. 곁에 가족도, 진심으로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마주한 부상은 나를 깊은 심연으로 밀어 넣었다. 건장한 남성이자, 10년을 넘게 배위에 있었던 베테랑이라도, 덮쳐오는 무력감 앞에서는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했다.

그 어두운 심연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타인의 온기에 목말라 있었는지, 그리고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짊어지려 했던 태도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역설적으로 그 절망의 끝에서 내가 진정으로 보살펴야 할 대상은 타인의 인정이나 업무적 성과가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발견했다.


3. 하선의 결단: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항로

당초 2026년 5월까지 승선할 계획이었으나, 나는 하선 시기를 4월로 앞당기기로 결단했다. 이것은 중도 포기가 아니라, 무너진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잡기 위한 가장 단호하고도 전략적인 선택이다.

치료를 위해 육지로 돌아가는 것은 후퇴가 아니다. 심연에서 빠져나와 나를 온전히 회복시키고, 다시는 이런 고립된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 인생의 항로를 재조정하는 과정이다.

나는 바다 위에서의 성취 대신 치유를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내 삶의 진정한 방향성을 알게 되었다.


KakaoTalk_20260408_074255498.jpg 다친 날 바다를 보는데 달이 너무 이뻤다. 달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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