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 지금 이대로 괜찮다

[5부: 성장] 내 인생의 마지막 공부, 불교

by 네오

80% 기능하는 삶


지인 A> 네오샘, 우리 계하나 할래요?


지인 B> 맞아요 샘, 우리 계 만들어요.


나(네오)> (…) 나 샘들 오래 보고 싶거든요.


(중략)


지인 A> 다음에 만날 때 ○○샘도 부를까요? 계속 보고 싶다 하셨잖아요?


나(네오)> 보고 싶은데 그리워하는 게 좋아요.^^


지인 A> 네??!! ㅋㅋㅋㅋㅋ


지인 B> 네오샘 불편해한다. ㅋㅋ 알겠어요. 샘. ㅋㅋㅋ


모든 계모임의 총무들은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ㅋㅋ 농담이다.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고 내 증상에 대한 이야기다. 성격, 기질, 경험, 자율신경계 이상, 갖다 붙일 수 있는 거 다 갖다 붙이자. 암튼 나는 대인관계에 몹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내 성향을 잘 대변해 주는 책이 있다면 알베르 카뮈 《이방인》,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 장자크 상페 《얼굴 빨개지는 아이》이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반전. 암튼 난 10대 때 지구 반대편에서 이 책을 쓴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한발 다가서면 두발 물러서고 오는 사람 거절하고 가는 사람 쌍수 들고 환영하는 내 성향 때문에 그렇게 많은 직장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계 맺는 직장 동료들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인 A, B는 나라는 사람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 가깝다. 살면서 많은 분들이 내게 호감을 가지고 먼저 다가와 줬다. 감사하고 송구할 따름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누구보다 내가 더 간절하다.


그러나 내가 지인 A, B처럼 대인관계를 잘하고 싶다면 그건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것과 같다.


대인관계에 '정상'이라는 것이 있다고 치자. (그런 거 없지만 설명을 돕기 위해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정상을 100%라고 가정해 보자.


치료받기 전 내 수준을 40%라고 했을 때 내 목표치는 몇 % 여야 할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100% 기능할 수 없다. 적어도 대인관계 영역에서는 말이다. 100% 기능하겠다 하면 그게 바로 욕심 즉, 괴로움을 자처하는 길이 된다.


노력하고 부단히 애를 쓴다면 80%까지 기능하는 삶은 가능하다. 그래서 굳이 욕심을 낸다면 내 최대치는 80% 여야 한다. 100%는 결코 도달할 수 없으며 20%는 나의 태생적 한계이다. 나머지 20%마저 극복하며 살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가 애초가 없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저 사람들이 부러웠을 것이다. 내가 못 가진 걸 가지고 있으니깐. 그러나 지금은 부럽지 않다. 그냥 곁에 두면 된다. 나는 저 사람들에게 없는 내가 더 잘 기능하는 영역들이 있다. 그들은 그런 나를 좋아해 준다.


대학생들 취업상담할 때 강점에 주목하라고 말하곤 했었다.

단점(-)은 보완하면 제로(0)가 되지만 강점은 부각시키면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안되는 걸 고치려 들면 삶이 피곤해진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사회는 획일화된 '정상 인간'의 프레임을 자꾸 만들어 낸다.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못난 나의 일면이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나는 믿기로 했다.


약속이 취소되면 난 여전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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