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성장] 내 인생의 마지막 공부, 불교
개인상담 vs 집단상담
A 정신과 의사> 네오 님은 정신과 다니는 게 바람직한 거 같지 않아요. 정신과 다니지 마시고 주변 사람들하고 함께 고민하고 마음을 터놓고 지내세요.
A 정신과 의사는 과거 정신과 주치의 배우자분으로 같은 정신과 의사였다. 치료 종결 2년 전이었다. 주치의의 권유로 A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되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분이 내게 해주신 말씀이었다. 한 마디로 '여기 오지 마세요.' 정곡을 찔렸을 때의 뜨끔함이란.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치부를 들킨 기분이 들기도 했다.
8년 전 그분이 해주신 말씀이 요즘 들어 생각이 많이 난다. 그땐 받아들이기 버거웠는지 애써 무시하려 했던 것 같다. '요즘'이라 함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정토회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지금'을 뜻한다. '생각이 많이 난다'함은 그분의 말씀이 이제야 수긍이 됨을 뜻한다.
치료 효과 측면에서 개인상담이 적합한 내담자가 있고 집단상담을 하면 더 효과가 좋은 내담자가 있다. 정신과 치료는 1:1 개인상담이다. 지금까지 줄곧 나는 개인상담을 고집해 왔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집단상담을 체험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주치의를 붙잡고 있던 5년간은 정신과 개인상담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호소하는 문제 특성상 나는 약물치료와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사람이 변한다.
A 정신과 의사는 내 갈망이 이제 더 이상 정신과 면담에서 충족될 수 없음을 말해 준 것이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섬 같은 존재가 아니다. 좋든, 싫든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과는 늘 함께하고 싶고 싫은 사람과는 손절하고 싶은 건 누구나 갖는 보편적 정서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8 고苦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8가지 고통을 뜻하는 말로 생로병사(生老病死: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4고苦에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해야만 하는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고자 하나 얻을 수 없는대서 오는 고통), 오음성고(五陰盛苦: 고정된 실체가 없음에서 오는 고통) 넷을 더한 것이다.
팩트 체크
▶애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죽음 등) 고통을 안 겪는 사람은 없다.
▶원증회고: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함에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호소한다.
▶구부득고: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욕망은 바라면 바랄수록 더 원하게 되지만 절대로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 욕망이 가진 속성의 패러독스(모순)이다.
▶오음성고: 특정 고통이 아닌 인간고苦의 총체적인 모습을 뜻하며 우리의 모든 번뇌 망상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다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가 실체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같음을 깨닫지 못해서 오는 고통이다. 모든 집착과 괴로움은 바로 이 오음성고에서 발생한다.
사람이라면 8고에서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 고통을 나 혼자만이 겪는 고통이라는 '특수함'때문에 고통이 더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나는 정신과 의사에게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특별하게' 여겼던 내 고통들을 꺼내놓았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정토불교대학+정토경전대학+깨달음의장+정토회 회원 활동), 태어나서 가장 많이 타인 앞에 나를 노출시키며 내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내가 겪는 고통을 다른 사람도 겪고 있고 내 문제가 곧 당신 문제이고 당신 문제가 곧 내 문제가 되는 특수한 경험을 2년째 하고 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꺼내 놓지 못해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한다.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고 사람 사는 세상, 온갖 종류의 일이 다 일어난다. 내가 겪은 일이 그 무엇이 됐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요즘 정신과에서 겪은 특수한 경험을 내려놓고 뒤늦은 보편성 체험을 하고 있다.
내 문제가 비단 나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법륜스님께 '불교대학' 명칭을 '불교'단어를 빼버린 다른 이름으로 바꿀 의향은 없으신지 조심스레 여쭙고 싶다. 그래야 더 많은 분들이 '불교'라는 종교적 단어가 주는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살다 보면 세상에는 한 번씩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나나!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하는 일을 겪으신 분들의 사연을 접하게 된다. 이런 분들의 후속 삶은 죽거나 새로 살거나. 나는 그동안 내 고통만 특별하다고 여긴 건 아니었을까? 정신과 의사에게는 A to Z까지 내 모든 걸 다 얘기했으면서 정작 나를 아껴주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스님께서는 공인이나 유명인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유명세 때문에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질문하지 않고 따로 개인 상담을 요청을 하면 대부분 거절하신다고 한다. '내가 누구다'하는 걸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는 문제 해결은 요원한 길임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이다.
스님이 쓰신 책이나 법문 중에 스님께서 겪은 일을 언급하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런 일을 겪고도 이렇게 관점을 바로잡고 살아가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존경심을 넘어서서 내 삶에 대한 자긍심도 생겨났다. 법륜스님은 출가하신 지 53년이 넘으셨다. 그동안 수많은 마음 수행 프로그램을 본인께서 직접 만드셨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의 모든 프로그램을 안정화시켰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체험해서 도움이 된 것만 채택하셨다고 한다. 정신의학이 개개인의 치료를 다룬다면 불교는 사회 집단 구성원 전체의 치료를 다룬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대학에 '불교 공부'는 없고 법륜스님이라는 '승려'도 없었으며 그저 지혜로운 한 어른께 심리학, 생태학, 사회학, 정치학을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함께 마음공부하는 도반들과의 마음 나누기는 어떨 때는 자조모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통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해당 문제에 따른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활 양식을 바꾸거나,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동기를 갖게 하는 지지체계를 형성한 집단이 자조모임이다.)
지난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61만 은둔 청년의 해법을 나는 정신과 치료 + 자조모임 + 봉사활동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치료는 기본이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과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자각할 때 자기 긍정과 자긍심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내 삶에서 소외시켰던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공감적인 표현이 씨알도 안 먹히던 내게 먹히기 시작했다. 가족, 지인들, 정토회 도반들, 블로그 이웃분들, 스쳐 지나가는 만남 속에서도 온기를 느낀다.
특수한 만남보다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쌓은 성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더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하고 싶다. (그들이 놀라움을 견뎌만 주신다면) 매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한 건 아니다. 그러기엔 지난 내 과거가 좀 쎄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