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황당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5부: 성장] 내 인생의 마지막 공부, 불교

by 네오

※ 진리라는 것은과거로부터 전승되어온 윤리, 도덕, 관습, 습관, 경전, 계율들로 근거해서 '이것이 진리다.'라고 검증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불교의 대승 사상 핵심을 설명하기 위해 적은 글이며 윤리적인 삶, 도덕적인 삶의 당위성에 대해 적은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 둡니다.


중생 1> 제 짐(고통)이 너무 무겁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부처님> 다른 사람의 짐(고통)도 네가 짊어지어라.

중생 2> 너무 괴롭습니다.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부처님>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모두 해결해 주어라.

내 문제도 버거운데 거기에 남까지 도와주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란 말인가! 작년 하반기 경전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황당했던 부분이자, 가장 큰 깨달음을 준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힘들면, 내가 괴로우면 내 고통과 괴로움을 누가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구원의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본래 불교의 가르침은 복을 비는 데 있지 않고 자등명自燈明자귀의自歸依법등명法燈明법귀의法歸依*하라고 했다. (* 스스로를 등불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아라. 법(진리)을 등불 삼고 법에 의지하라. 그 외엔 다른 무엇에도 의지해서 안 된다.) 나는 작년 8월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이어서 9월 경전대학에 입학했다. 불교대학 공부가 소승불교에 대해서 배운다면 경전대학은 대승불교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대승불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후기를 남기기로 했다.- 건강·의학 블로그 운영자 -


교육청을 상대로 10개월간 시정 요구를 한 적이 있다. 직장 잃을 각오 당연히 했다. 그러나 내가 받을 돈 몇 푼보다 더 많은 기간제 선생님들이 겪게 될 피해를 막고 학생들이 응당 누려야 할 교육적 권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공론화되지 않은 문제는 누군가의 고통의 대가로 계속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블로그 운영자 네오의 시정 승리 소감 중 -

사랑하는 딸을 암으로 잃은 슬픔을 겪은 뒤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 암 환우를 돕기 위해 태초 먹거리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태초 먹거리 학교 설립자 이계호 교수 -

지금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또 다른 정신 나간 의사가 이 분야(외상외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마음먹는다면, 우리의 기록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기록의 일환이다. - 이국종 의사가 《골든아워》 책을 쓴 이유 -

저는 고문도 당해보고, 억울한 일도 당해보고, 왕따도 당해보고, 온갖 경험을 해봤습니다. 승려 사회 안에서도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왕따를 당하고 차별을 받았습니다. - 법륜스님 -


세종대왕 한글 창제는 백성을 향한 세종대왕의 마음이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이 아닐까.

우리 주위에는 위와 같은 사연으로 개인이 겪은 어려움과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 물적 자원을 투여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자기희생을 선택한 삶을 살기로 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 등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수많은 발명품들, 수많은 무료 공유 플랫폼들은 당시 누군가가 '왜 그래야 되지? 왜 이렇게 힘들지? 왜 이렇게 불편하지?'라는 개인의 불편함, 고통, 어려움, 고난을 개인의 문제의식으로 그치지 않고 더 나은 행위와 무엇으로 발전시킨 것들이다. 내가 유튜브와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며 미천한 글 실력으로 끊임없이 '마음 건강 만세'를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계급, 신분, 인종, 여성차별 철폐, 노예 해방은 그 당시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는 이름도 모를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 투쟁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주화 시대에 태어난 나는 독재 정권 시대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매체를 통해서만 간접 체감할 수 있으며 지금 내가 당당히 행사하는 근로자의 권리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이것이 대승사상의 핵심이자 전부이며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소승불교가 개인의 행복 추구(개인의 해탈과 열반)에 있다면 대승불교는 너와 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행복 추구(모두의 해탈과 열반)에 있다. 심리학 용어 중 방어기제로 말하면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불리는 승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승화: 수용될 수 없는 충동과 욕구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충동으로 대체되는 것. ex) 예술과 같은 창조 행위)


법륜스님에겐 지금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죽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한다. (사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정토회 활동을 하다보면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죽기를 중단하고'살기로 선택'한 많은 분들의 사연을 접하게 된다. 물론 스님께서는 정신과 약도, 심리 치료도 적극적으로 권유하신다.


죽는 것도 선택이지만 이왕 살기로 선택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과 생각의 폭을 넓혀 주신다. 승려 사회 안에서도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왕따를 당하고 차별을 받으셨다는 법륜스님.


나는 평생 무교로 살아왔고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살아서인지 스님의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뭐 저런 사람들이 고승이고, 승려냐!'라며 속으로 얼마나 분노하고 비난했는지 모른다. 스님은 한 번도 자신을 왕따를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자신은 그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법륜스님은 출가 후 한동안 기성 한국 불교가 기복 신앙을 추구하고 사회문제를 등한시한다며 비난하고 비판하셨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비판만 하고 분노하며 피해의식 속에 사셨다면 지금의 법륜스님도, 정토회도, 대승사상도, 2600년 전의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도 끊어졌을 것이다. 또한 법륜 스님의 법문을 통해 좀 더 행복해졌다는 나를 포함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조각의 대승사상의 마음을 내신 수많은 분들로 인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과 고통을 나만이 겪는 불행이라 자처하며 지금 여기서 멈출 것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 불행임을 자각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지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그 어떤 삶의 방식도 옳고 그름 없는 하나의 삶일 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 해결 과제, 목표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멈추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반드시 온다. 살면서 위기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런 순간에 툭툭 털고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을 때 그 속에 대승사상도, 나의 존재 개혁도 함께 실현시킬 수 있다. 이를 두고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고 한다. (*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으로 막다른 위험에 놓이게 되었을 때 한 발 더 나아가는 것)

법륜스님> '또 넘어져도 괜찮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기만 해라.' 백 번 잘못하면 백한 번째에는 일어나고, 천 번 잘못하면 천한 번째 일어나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집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연구할 때 괴로움도 멈추게 됩니다.


어려운 가운데 나의 어려움과 고통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연구하며 한 발짝만 더 나아가는 것이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릴 수 있는 연금술의 기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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