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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2)

놓치기 쉬운 수반성에 관하여

이전 글에서 설명한 심리적 수반성을 다시 정리하면, 상담장면에 이러한 의미가 있다.


1. 관계적 의미

수반성은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조건과 반응 간의 연결 고리이자 맥락적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2. 변동성의 인정

심리 상태나 행동이 수반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변화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심리적 적응과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3. 상호작용의 다층성

수반성은 개인 내부의 심리 작용뿐 아니라, 대인관계나 사회문화적 배경 같은 외부 요소와도 맞물려 있다.


4. 상담과 개입의 의미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특정 상황과 연결 지어 이해함으로써, 문제 상황의 ‘수반 조건’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즉, 변화하고자 하는 행동이나 감정이 수반되는 조건을 바꾸면, 그 심리 상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적 개입 전략의 기초가 된다.


상담사가 수반성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내담자의 문제를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사람 마음은 단순하지 않다. 내담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은 항상 어떤 상황과 연결돼 있다. 상담사는 그 ‘수반 조건’을 찾아내서 내담자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깊이 이해해야 한다.


효과적인 상담 개입을 위해서이다. 문제 행동이나 감정을 바꾸려면 그것을 일으키는 상황, 즉 수반 조건을 바꿔야 한다.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담은 그냥 ‘증상’만 다루는 겉핥기식이 될 수 있다.


내담자와 공감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이다. 수반성을 알면, ‘이 사람은 왜 그렇게 느끼고 행동할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내담자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고 느끼며 상담 관계가 더 깊어진다.


즉, 상담사는 내담자 감정이나 행동에 수반된 것들을 알아야 내담자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수반성은 ‘감정의 배경 음악’이다. 사람은 종종 “쟤 왜 저래?”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질문은 사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저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 연주되었을까?” 수반성은 그 감정의 ‘배경 음악’을 듣는 태도다.



단순 인과 vs. 관계적 이해


우리는 흔히 ’A 때문에 B가 생겼다 ‘는 식의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감정이나 행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아이가 화를 낸다면 그건 단순히 장난감을 뺏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누가 있었고, 어떤 말이 오갔으며, 그 아이가 평소에 어떤 감정을 안고 있었는지—이런 맥락 전체가 ‘수반 조건’이 되어 작용한다.


상담 장면을 떠올려보자. 어느 청소년 내담자가 엄마에게 혼났고, 심하게 대들다가 가출을 했다. 이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늘 바빴지만, 그날은 괜히 더 날카로웠어요. 제가 늦게 온 걸 혼냈는데, 사실 저도 기분이 안 좋았거든요.”

여기서 ‘혼남’이라는 사건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엄마의 피로, 아이의 감정 상태, 집안 분위기 같은 것들과 얽혀 나타난 ‘수반적 현상’이다.


또 다른 예로,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겉으로 보면 “왜 저래?” 싶겠지만, 그 아이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오늘 아침, 엄마는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 학교에서는 친구에게 그림을 찢겼다.

– 선생님은 아이가 조용하니 그냥 넘어갔다.

– 집에 와서도 아무도 아이의 눈빛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왜 그렇게 짜증을 내니?” 하고 물었을 때, 그 아이의 감정은 한순간에 터져버린 것이다.


상담사가 이걸 놓치면 어떻게 될까?

내담자의 감정을 표면에서만 해석하게 된다.

‘문제 행동’만 다루고, 진짜 원인이나 정서적 필요는 놓치게 된다. 내담자 입장에선 “이 사람도 나를 오해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상담사가 수반성을 관계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

감정은 그저 ‘반응’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상담사는 이 맥락을 함께 들여다보며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내담자는 비로소 자기감정을 ‘설명할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감정에는 늘 맥락이 있다. 그리고 그 맥락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말투, 표정, 분위기, 시간대와 같은 요소들과 함께 작동한다.


우리가 상담 현장에서 ‘수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감정을 이해하려면, 그 감정이 어디에서, 어떤 장면에서,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상담자는 무엇을 보는 사람이어야 할까?


내담자가 말한다.

“그날 엄마가 저를 혼내긴 했지만, 사실 저도 엄마 기분이 이상하단 걸 느꼈어요.”

“그냥 울고 싶었어요.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말들이 나올 때, 우리는 그 감정이 어떤 상황과 수반되어 있었는지, 그때 그 아이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참았는지를 함께 들어봐야 한다.


그래서 상담자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그 이야기 속 배경 음악까지 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 아닐까?


사실 상담사가 아니어도 좋다.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면 누군가의 감정이 낯설고 버겁게 느껴질 때, 그 감정은 ‘그냥 나온 게 아닐 수도 있다’고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걸 알게 되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다정해진다. 그 시선이 바로, 우리가 서로를 덜 오해하고 더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고 믿는다.


오늘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다정함이 닿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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