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상담사의 어느 날
상담이 엉망이었다고 느낀 날,
내담자는 고맙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그렇다. 상담을 마치고, 상담 중에 했던 말들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타이밍을 놓쳤던 질문, 어색하게 흘러가던 대화에 자책된다. 그 순간 내가 제대로 ‘듣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의심하기도 하며 말을 꺼내다 말았던 내담자의 표정, 내가 얼버무리듯 넘겨버린 부분,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나 싶은 장면들 등
모든 상황이 나를 향한 자책의 언어로 바뀌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왜 그렇게 횡설수설했지?’
‘내가 왜 거기서 그런 말을 했을까…’
‘오늘 상담 망친 것 같다.’
다음 상담을 위해 마음을 추스르려 애쓰면서도,
문득문득 미련스러움이 잔기침처럼 되살아날 때,
나는 나 스스로에게 가혹해진다.
상담자라는 역할 안에 갇혀,
잘 해내야만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설프고 망쳤다고 느낀 날,
그다음 회기나 피드백 링크를 통해 내담자는 뜻밖의 말을 남긴다.
“선생님 덕분에 마음이 조금 정리됐어요.”
“선생님 질문에 좀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의아하다. 내가 망쳤다고 생각했던 이 시간이,
내담자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단 말인가?…
그 순간,
내가 놓치고 있었던 어떤 중요한 것이 스친다.
모든 상담은 의미 있다 – 도도새 법칙
심리치료에 ‘도도새 법칙(Dodo Bird Verdict)’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름은 조금 귀엽고 묘한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그 작품 안의 도도새는 경주가 끝난 후,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이겼다. 모두가 상을 받아야 한다 ‘
이 말처럼,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상담 이론으로 상담한 과정을 비교한 연구에서 이론이 달라도, 진심을 담은 상담은 모두 유사한 효과를 낸다는 결론을 찾았다. 정신분석이든, 인지행동치료든, 인간중심치료든, 기법은 달라도,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와 진정성이 있다면 그 상담은 충분히 변화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즉, 상담에 진짜 변화를 만드는 건 이론을 넘어서는 무언가 있다는 것이다. 상담의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들 가운데, ‘공통요인(Common Factors)’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공통요인은 이론이나 기법을 넘어, 모든 효과적인 상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을 말한다.
중요한 건 다음과 같다.
+ 신뢰와 공감으로 맺어진 상담 관계
+ 상담자가 온전히 ‘있어 주는’ 감각
+ 감정을 편안히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 말하면서 스스로를 다시 만나는 시간
+ 그리고, 말보다 더 깊이 전해지는 상담자의 진정성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상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회복적 치유적 만남’이 된다. 정확한 해석이나 날카로운 통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누가,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었는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성, 상담서의 존재로 전해지는 언어
상담에서 가장 깊은 울림은 때로 그럴싸한 말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오는 것 같다. 내담자는 상담자의 말보다 더 먼저, 그 사람의 눈빛과 호흡 혹은 태도를 통해 ‘이 사람이 진짜로 나로 존재하는구나 ‘라는 느낌을 아니 느낌이라기엔 부족한 감각을 갖게 된다.
내담자의 진정성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거 같다. 학대피해아동들 앞에서 내가 어떠한 말을 해도 의미 없고 부질없이 느껴질 때에 모래놀이상담에 심취했던 것도 같은 맥락과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어색하고, 조금은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으로 곁에 있는 태도 그것이 내담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위로가 될 것이다.
내가 망친 것 같고, 어버버 했던 반응 속에서도
내담자는 나의 진심에 닿았을 것이다.
상담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사람이기에 흔들린다. 내 감정이 엉켜 있을 때가 있고, 내 판단이 흐릿해질 때가 있으며, 말을 고르지 못해 머뭇거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실수한 나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건네는 태도는 결국 내담자가 경험하는 현실세계의 관계를 더 이해하고, 상담자로서의 나를 알아가며 회복력을 키워주는 자양분이라 믿는다.
내담자에게 말하듯이 상담자 스스로도 말해야 한다.
‘그럴 수도 있어요 ‘
‘괜찮아요.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상담에서 내가 흔들릴 때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완벽한 해석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이 문장은 상담자가 되어 처음 몇 년간 흔들렸던 나를 붙잡아주었던 말이다. 무언가 해내야 할 것 같은 부담, 내담자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무력감, 기대만큼 되지 않는 나에 대한 실망감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조용히 떠올리곤 했다. 내가 쌓아온 문장들, 그 말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상담실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상담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그대로 존재함으로 내담자는 말할 때가 있는 것이니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런 날이 있겠지요?
하루를 망쳤다고 느낄 때 말이에요.
친구와의 대화가 어긋났을 때,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괜히 날을 세웠을 때,
아이와의 훈육이 후회로 남았을 때.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은 때로는 성찰이 되지만, 지나치게 날카로워질 땐 마음을 다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분석이나 자책보다 조용히 바라보는 연습을 해도 좋습니다.
- 그땐 내가 그랬구나
- 오늘 나는 조금 부족했지만, 그래도 애썼구나
그 다정한 인정의 말 하나가
우리 마음을 천천히, 조용히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오늘 나는 나에게 다정하자. 토담토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