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그래도 걷지는 않았다고 말하기 위해

울타리 안의 3등에서 선택한 나만의 레이스

by 김바리


자신의 삶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어떤 숫자를 선택하게 될까. 나의 인생은 항상 '3'과 같았다. 1'은 금메달리스트처럼 항상 기대와 부담 속에 산다. '2'는 은메달리스트로 항상 '1'을 쫓아 숨 가쁘게 산다. 그렇다면 '3'은 어떤 의미일까. 뒤에서 따라오는 것도 적당히, 앞을 따르는 것도 적당히 신경 쓸 중간에서의 위치를 찾는 것. 어쩌면 나의 '3'이라는 숫자에 대한 선호는 앞서기는 두렵고 뒤처지기는 불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희미한 존재감은 있으나 눈에 띄지는 않는. 그렇게 중간에서 자리를 잡는 것처럼, 도시의 속도에 맞춰 중간의 위치에서 균형을 찾으며 살아왔다.


이런 성향은 사회인이 되고서도 계속되었다. 반드시 생존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당히 시기받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에게 잘 보여가며 그저 그렇게 울타리 안에서 소위 ‘묻어가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필요하다면 정말 짧고 강한 열정을 내어 어떻게든 그 허들을 넘으면 되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종종 외부 요인을 탓하곤 했다. 내가 책임을 지기 싫었기 때문에 '사실 그 모든 것은 내 탓이에요.'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적당히 묻어지냈고 굳이 내가 나설 일이 아니라면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받기가 두려웠다.


도시의 복잡한 생활에서 자주 내 삶이 타인의 선택에 따라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마치 TV를 보면서 원하는 프로그램의 결말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꾼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 나에게 남아있던 용기는 딱 하나였다. 누군가를 탓할 용기.


한동안 매일 아침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렸다. 그런 나날들 속에서, 아침마다 달리는 것은 나에게 안식과 용기를 주었다. 처음에는 신발끈을 매고 밖으로 나서자부터 시작한 것이었는데 5킬로를 달렸고, 10킬로를 달렸다. 대단한 기록은 아닐지 몰라도 길 위에서 내가 밟은 걸음만큼, 내가 뱉어낸 땀만큼 세상을, 타인을 탓할 용기를 버리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부터 산들거리는 바람으로부터 지저귀는 새들과 이른 아침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부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괜찮은 용기를 얻었다.


프랑스어에는 헤아릴 수 없는 명사에 붙는 관사가 있다. 용기(courage)는 du courage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약간의 용기'라는 의미이다. <나답게 살 용기>에서 기시미 이치로는 우리에게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불쾌한 일도, 부조리한 일도 피할 수 없지만 우리의 삶의 기쁨까지 빼앗지는 못하므로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는 일에 공헌하기 위해 남이 나한테 무엇을 해줄지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생 과제 대부분은 괴롭지만 그 과제를 회피하기보다 맞설 때 오히려 삶의 기쁨이 용솟음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왜 미움받기를 두려워하고 책임을 회피하는지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과거의 경험들을 되짚어야만 하는 것은 꾹꾹 묻어놨던 타지 않는 쓰레기를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삽으로 열심히 파야하는 것과도 같은 고통이다. 이 타지 않는 쓰레기를 파내고 나면 이 친구를 어디에 옮겨야 하나 하는 걱정부터 든다. 그렇다, 실행하지 않는 프로계획러는 또 이렇게 먼저 앞서 나가서 걱정부터 한다. 그리고는 용기 낼 용기를 거두곤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먼저 걱정하는 이런 것 또한 결국 고통을 맞닥뜨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닐까.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 내지 않은 용기에 대한 자책. 오랫동안 나의 과제를 회피해 오면서 내가 삶의 온전한 기쁨을 느꼈는가라고 자문한다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약간의 용기를 내어 고통스럽지만 찬란한 기쁨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내 과제를 마주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용기가 있겠지만 누군가를 탓하는 용기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것은 용기라기보단 오기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무언가를 하려면 우리에겐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힘이 닿는 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덧 운명에 휩쓸리지 않고 운명의 주인이 될 것이다.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말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이제는 앞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중간'에서 나만의 균형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선택에 달려있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 믿음을 실천하기 위한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자신을 나타내는 숫자가 어떤 숫자든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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