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계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는 나를 향하여
나의 두려움과 불안, 그 근원은 주로 외부에서 온다. 이력서 제출 후 서류 탈락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능력이 부족한가?', '내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자주 머릿속을 스쳤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거절을 당하면 그 사람이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아닐까 걱정을 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언니와 함께 차를 타는 도중 조수석에 앉아 넋두리를 했다. 내용을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나는 지금 놀고 있지 않은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남이 보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속상해.”
“그게 왜 문제야?”
“뭔가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보이는 사람 같잖아.”
한참을 듣던 언니는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마. 남들이 뭐라든 무슨 상관이야. 넌 네가 생각하고 믿는 걸 좀 더 단단하게 마음먹었으면 좋겠어.”
나를 믿는 단단한 마음이라. 듣고 보니 그랬다. 아무리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남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여전히 신경 쓰고 있는 거였다. 왜 그렇게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걸까. 몇몇 회사가, 내가 속한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틀린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핵심가치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이것이 과연 건강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누군가가 알려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은연중에 내가 먹은 마음이, 내가 해온 액션이 틀린 것이었음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는데, 내 마음을 믿고 더 단단해지라는 언니에 대답에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새해 업무 분장에 관해 전해 듣는 상담 시간이 있었다. 팀장님은 나에게 작년 한 해 본인의 업무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으셨고, 초반에 좌충우돌이 있었지만 후반에는 그래도 열심히 한 거 같다고 대답했다. 말을 마치기가 가 무섭게 팀장님은 내 실무 능력이 부족하다며 창의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다.
상담 당일에는 많이 상처도 받고 억울하고 섭섭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고양이의 비밀>을 읽고 금세 위로가 되었다. 하루키는 말한다. 자신도 젊어서는 빈번히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렇게 처참할 정도로는 상처받지 않게 된다고 말이다. 비슷한 일을 몇 번이나 겪어본 결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뭐야, 지난번이랑 똑같잖아'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나이브한 감수성을 품은 채 내가 속한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는 건 소방수가 레이온 셔츠를 입고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못 본 체, 못 들은 체하면 된다는 팁(?)도 공유해 주었다.
팀장님의 질책을 받은 그날, 내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내가 쌓은 감성과 창조성과 실력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고 인정해 주는,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계속, 제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그로부터 3년 하고 몇 개월이 흘렀다. 3년 전에 비해 나는 나를 스스로 인정해 주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게 되었느냐? 고 누가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은 일을 몇 년을 해오다 보니 3년 전에 비해서는 나름의 노련함도 생겼을뿐더러 이런저런 콘텐츠로 실험을 해본 결과 역량에 대해 한 사람의 평가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 비슷한 숱한 시련을 마주칠 텐데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믿어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고용한 사람이 나를 믿어준다고 해도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계속 반복되는 거절과 실패의 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 나이를 들어간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이런 숱한 거절의 경험을 통해 상처에 무뎌지고,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기회를 갖는다는 면에서는 또 좋다. 젊을 때 더 빨리 배웠다면 제일 좋겠지만, 직접 겪어 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살면서 겪는 다양한 모양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때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고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을 하나하나씩 더 늘려 나가는 것.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점점 나의 있는 그대로가 좋아져 간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부족하고 못난, 고약한 내 모습이 좋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인정하기 시작한 내가 좋다.
나에 대한 믿음.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언니의 그 한마디가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의 나를 움직일 것이다. 언니의 말에 힘입어, 나는 이제 자신의 가치를 더욱 확고히 믿어나가려고 한다. 이미 몇 가지 일에서는 남의 시선을 무시하고 내가 믿는 길을 걸었다. 앞으로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큰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스스로를 믿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