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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의미 있고 쉽기까지 한 일은 없다

세스 고딘, ≪린치핀≫ 속 한 단락

by 김바리
예술을 창조하고 관대함을 실천하고 창조성을 드러내는 일이 힘든 이유는 이것이 감정노동이기 때문이다. 지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전과 의지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 세스 고딘, ≪린치핀≫ (라이스메이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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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은 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을 말한다.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존재'를 뜻하는 말로 ‘린치핀'이란 용어를 재해석했다. 이 사람들은 열정과 활력이 넘치며 우선순위를 조율할 줄 알고 불안에 떨지 않고 유용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통칭한다 (예스 24 참고). 이 사람들이 가진 대표적 특징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 노동을 기꺼이 자처하며,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지도를 그릴 줄 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자기 계발 크리에이터 드로우앤드류의 세스 고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특히 퇴사가 잦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기 어려워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는 말에 ‘재미있고, 중요하고, 쉽기까지 한 것은 세상에 없다’라고 대답한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섬광이 반짝하고 빛나는 듯하였다. 내가 가진 일에 대한 신념이 여전히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삶의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그렇지만, 일이라는 분야에도 꽤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좌절하고 실망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려 이곳저곳을 헤맸다. 규모가 큰 기업에 들어가면 일이 행복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잘 알려진 엔터테인먼트사에 들어가 이 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 ‘~하면 행복할 것이다'의 실험 결과는 계속해서 내 기대와 조금씩 달랐고 결과의 모양 또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회사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직장인의 월급은 ‘산소 호흡기'라고. 무릎을 탁, 쳤다. 혹자는 이 말이 월급에 산소 호흡기 이상의 것을 바라지 말라, 로 받아들이겠지만 내가 느낀 것은 달랐다. 호흡기를 달아주었으니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춤도 춰보고, 벽도 타보면서 당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산다는 것의 의미와 재미를 느껴보라고, 우리는 그 최소한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해 줄 테니. 유년 시절에 나의 생존과 안전을 책임져줬던 것이 가족이었다면, 사회인으로서 나의 생존과 안전을 책임져주는 것이 직장이라는 공간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 이 호흡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도 많다. 월급이 밀리거나, 열심히 달리고 춤추고 산도 넘고 물도 건너봤지만 정말로 호흡기’만' 계속 달아주는 그런 조직. 참 재밌게도 첫 직장을 제외한 지금까지의 모든 회사가 앞서 말한 호흡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그런 조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고 싶었다. 분명 재미도 의미도 있는 어딘가에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 곳을 오랫동안 찾지 못하는 동안 헤매는 동안 일을 하는 다른 형태를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시스템 안에서 내가 어떻게 호흡하고 맘껏 뛰놀 수 있게 될지 실험해 보고 있다.


한편, 이 실험의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조금 더 튼튼한 산소호흡기가 필요해졌고 새로운 근로 수단을 찾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이력서 제출 버튼을 누르며 내 안에서 계속 필터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이 조직은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을 것 같아', ‘이 일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겠는 걸’, ‘그때 했던 고생과 똑같은 고생을 할 거 같은 직무네' 등등. 그렇게 나는 또,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이상적인 답지를 적어 입구 앞에서 문만 두드리다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돌아 나오고 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세스 고딘의 말은, 지금 내가 가진 조직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재미있고, 중요하고, 쉽기까지 한 일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이 세 가지 중 최고 한 가지를 포기하고 문을 두드려 보는 것, 다른 하나는 이 중 한두 가지를 만족하는 곳에서 나머지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 (완벽하게 다다르기 어려울지라도).




“There are no things you can do that are easy fun and important.”

Seth Godin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세스 고딘이 말하는 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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