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창의성의 즐거움≫ 속 한 단락
우리 모두는 두 가지 상반된 성향을 지니고 태어난다. 자기 보존, 자기 권력 확대, 에너지 축적을 위한 본능으로 구성된 보수적인 성향과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새로움과 모험을 즐기는 본능으로 구성된 개방적인 성향이 그것이다. (...) 보수적인 성향은 외부적인 도움이나 격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개방적인 성향은 돌보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고 만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창의성의 즐거움≫ (북로드, 2003)
창의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쉽게 떠올리게 되는 인물을 상상해 보면 더 그렇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들은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고안해 낸 사람들이다. 나 역시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서비스 콘텐츠를 기획하며, 브랜드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일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일상에서도 창의성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뉴미디어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은 레퍼런스를 참고하여 벤치마킹을 잘 해냄과 동시에 끊임없이 트렌드를 파악하며 읽고 보는 사람들의 눈과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콘텐츠를 보고 분석 하는 위치에 머물수록 창의성, 창조성에 관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런데 왜 창의성인가? 단순히 나의 일을 해내기 위함이다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나의 창조성에 대한 근원적 갈망을 전부 설명해주지 못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는 내 일상의 큰 기쁨이자 원초적인 본능인 듯하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 안에 세계를 넘어서 바깥 세계에서 접하는 재료들이 필요하며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것보다는 개방적인 성향으로 더 치우치게 된다. 위의 단락에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이야기했듯, 개방적인 성향은 돌보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고 만다. 때문에 자꾸만 더 창의적인 인물, 창조적인 습관, 창의적인 환경 등을 찾아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겪었던 얼마 전의 사건이 창의성을 더욱더 미래 인재를 위한 필수 역량으로서 여기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문화를 지향하는 이러한 추세가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처럼 문화가 쉽사리 분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창의성의 즐거움≫ (북로드, 2003)
이 문장을 읽고서 코로나 팬데믹을 생각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오던 근태문화, 옳다고 생각해 오던 생활양식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 그리고 그러한 예측 불가능한 변화 앞에서도 인류는 꿋꿋하게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찾아내었으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이들이 일의 형태의 변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적응해 나갔다.
앞으로도 세계는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고 예측하는 방식으로만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일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을 발휘해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을 바라든지, 개방적인 성향을 발휘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나의 생존을 넘어선 더 큰 세계를 꿈꾸든지.
‘변화’는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가져다준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는 자르고 나서 이전 머리보다 엉망이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자르고 나서 말끔해진 모습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해외여행은 이국적인 풍경과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설렘과 집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불안감을 안겨 준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방법으로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면, 이는 새로운 방식이 가져다 줄 성공에 대한 바람과 함께 기존에 하던 방식보다 더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 순간에든 사후에든 우리에게 일련의 의미를 가져다준다. 변화의 형태를 넘어, 우리가 변화를 시도했다는 그 행위 자체로서도 말이다.
창의성은 ‘변화'다. 한 공간에 머무는 정적인 개념이 아닌, 계속해서 움직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인지적 사고의 변화하는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만드는 성질’, 창의성의 한자를 해석하자면 이러하다. 긍정적인 미래를 가져다줄 새로운 것을 상상할 때의 우리의 모습은 언제나 활기차다. 창의성이라는 글자에는 어디에도 긍정의 의미를 갖는 부수는 없지만,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상상할 때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 창(創)이 가진, ‘시작한다'는 의미 때문일까. 새로이 시작하는 모든 것은 설레고 기쁘다. 시작하는 모든 것은 활력이 담겨있다. 2024년 새해 첫 주가 유독 생기가 느껴지는 이유도 그것이겠지.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 창의성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우리에게 가장 활기찬 삶의 모델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창의성의 즐거움≫ (북로드,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