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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이란 무엇인가

by 김바리
현대 심리학은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는 모든 행동 방식을 ‘생산성'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만이 생산성인 건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인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지식을 전달하고, 가치를 보여주고, 책임을 지고, 환경과 자원을 다음 세대를 위해 보존하고, 기업, 재단, 영화, 알고리즘 개발, 예술품 수집, 발명 등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어떤 것을 창조하는 사람에게도 생산성이 있는 것이다.

-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 (다산초당, 2020)



생산성이라고 말하면 단연코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가 떠오른다. 이는 분업화와 자동화를 통해 제품을 만들기 위한 비용과 시간을 줄임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큰 부를 이룬,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바람직한 성공 사례이다.


조직 내에서 관리자의 역할로 일하면서 나 또한 자연스럽게 생산성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 투입되어야 하는 인력, 활용할 수 있는 리소스를 고려해 효율의 관점에서 최적의 산출물을 상상하며 운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산성은 자본과 긴밀하게 연결된 개념이라고 믿어왔다.


개인의 삶 안에서도 생산성은 실용적이고 성과 중심적인 일련의 행위, 그것을 통한 성취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제 아무리 열심히 언어 공부를 하고 스킬을 익혀도 그것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돈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생산성이 낮은 일', ‘여가 시간에 하는 활동'으로 간주하고는 삶의 우선순위 균형을 잡아야 할 때마다 하나씩 내려놓고는 했다.


꽤 오랫동안 개인의 자기 계발과 성취만 생각해 오던 내 삶에 목표가 사라진 때가 있다. 공허함과 좌절감이 함께 찾아온 그 무렵, 회사 식당 브라운관을 통해 생방송으로 흘러나오는 비극적 사건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멀지 않은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우체통으로 배달된 신문을 펼치면 차가운 언어로 쓰인, 사각지대 밖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마주했다. 내 개인의 삶의 성취보다 더 중요한 일을 눈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누군가를 돕기 전에 무엇보다 나를 먼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단단해져야 돕는 과정에서 흔들리더라도 꺾이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렇게 마음을 돌보고 나를 이해하는 노력을 조금씩 더 늘려나갔다. 나를 돌보고 나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의 더 중요한 일을 발견하는 수단으로 외국어 학습과 독서, 글쓰기, 창작을 선택했다. 이 행위에는 목표는 없다. 시스템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행동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나의 유한성을 알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나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빚을 져왔던 이 혜택을 다른 이들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움을 통해 세상을 발견하고,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써보면서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살아온 날의, 살아갈 날의 의미와 재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 그러한 마음으로 글쓰기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누군가의 새로운 배움을 돕는다.


배움을 통해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을 기르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내가 가진 자원을 활용해 누군가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현대 심리학의 정의에 따르면 효율을 따지지 않아도, 무언가 실용적인 결과를 만들지 않은 상태더라도 이미 나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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