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현대지성, 2021)중 한 단락
모든 부분에서 착한 일을 하려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다수 사이에서 파멸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므로 군주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면 착하게 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며, 필요에 따라 그렇게 해야 합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현대지성, 2021)
책장을 훑다 보면 ‘언제 이 책을 샀더라'싶은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전 회사에서 관리직을 맡게 되면서였을까. 항상 너그러움만을 내비칠 수 없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 예를 들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예산 리소스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리더십을 고민하다 손을 뻗친 책이리라.
의사 결정권이 오롯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때 반대나 회의론에 부딪히는 건 조직 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면 참 좋겠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직의 주요 인사 의견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조율을 하고 반대되는 부분도 감안하고 치고 나가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진행하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예산은 경영 부서, 홍보는 마케팅 부서, 콘텐츠 제작의 경우 외부 전문가 등 크고 중요한 일은 대체로 혼자 해낼 수 없기에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이 설득의 과정이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배워본 적 없는 리더십. 팀원으로 있을 때 어깨너머로 본 것 몇 번. 하지만 그 조차도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일들이기에 참관 수업과도 같았던 경험들. 무엇보다 몇 번의 보고 들은 경험을 기반으로 내가 내릴 의사결정에 대한 확신의 부족. 그런 맥락이 모두 합쳐져 지혜를 찾아 구매했던 책이었다. 그 책을 2024년, 지금 다시 꺼내본다.
왜 지금 리더십인가. 왜 지금 군주론일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아놓고 싶달까. 게다가 리더십을 발휘할 직접적인 환경은 아니지만 상황이 어려운 시기인 만큼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도 군주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든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자'와 같은 메시지가 언제나 통하지는 않기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오래 읽혀왔던 건 아닐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불안정과 도시 국가 간의 권력 투쟁으로 특징지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통합하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통치자와 정치인을 위한 안내서로 종종 간주된다.
마키아벨리는 성공적인 리더의 자질을 탐구하며 실용적인 지혜, 결단력, 적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리더로서의 미덕(virtù")은 힘, 교활함, 국정 기술과 같은 자질을 포함한다. 때때로 인색함도 마다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신중한 군주는 인색하다는 오명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인색하게 군 덕분에 수입이 충분하면 누가 전쟁을 걸어오더라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현대지성, 2021)
그는 탁월한 리더가 가진 자질로서 ‘편에 서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길 다른 군주에 대항하는 어느 군주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중립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언제나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현대 사회 안의 조직에 대입해 보면 세력 간 정치 싸움에 어느 쪽이든 편을 들라는 셈인데, 나에겐 여전히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정하겠다. 사람이 모인 곳에든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눈에 쉽게 띄느냐 아니냐의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권력이 드러나는 모양 또한 다르고 말이다.
결국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곳에 권력이 존재하는 한,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키아벨리의 글을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리더십이란 권력 안에서의 처세, 좀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처세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이 처세술이 특히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상황에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실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꼭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이야기. 조직 안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 권력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림자를 마주할 때를 대비해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 편에도 들지 않고 너그럽고 자비롭기만 한 리더는 ‘파멸'에 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