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내가 같다는 착각

폴 윌리엄스, 트레이시 잭슨, ≪습관의 감옥≫중 한 단락

by 김바리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에서 배우라.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이유를 잘 살펴보라. 목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 지금이 최적이다. 무엇이 당신을 마사지 숍, 도박장, 냉장고 또는 백화점으로 내모는가?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가?

- 폴 윌리엄스, 트레이시 잭슨, 조은경 옮김, ≪습관의 감옥≫ (판미동, 2018)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핑계일까. 어떤 일이 벌어지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사후 해석을 거치게 된다. 안 좋은 일의 경우 자신이 ‘~때문에 이런 걸 했다', 좋은 일의 경우 ‘~덕분에 이것을 했다’처럼 말이다. 인간의 본능인가 싶은데. <스킨스>, <섹스 에듀케이션> 등 해외 하이틴 드라마 속 문제아들이 겪는 이야기 속에서 이런 상황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이런 드라마의 경우 ‘중독'은 이야기 전개를 위한 필연적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장기적 목표보다 순간의 쾌락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고통을 피하고 싶은 욕망, 더 나은 방법을 모르겠다는 무력감,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머지않은 과거의 일이다.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순간의 쾌락을 찾는 기회가 찾아온다. 나의 경우, 호기심과 미디어의 영향, 그리고 접근성이 좋았던 주변 환경이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고, 튼튼한 몸을 물려받은 덕분에 큰 문제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다. 비판적인 사고 없이 모방을 했고, 그 모방이 습관이 되어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쳤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저녁에 침대에 누우면 자기 전에 핸드폰으로 의미 없는 스크롤을 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나중에 볼 동영상’을 추가하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원인 모를 가벼운 공허감이 들 때면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하나 정도로 충분할지도, 아니 굳이 사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는 그것을 ‘4캔에 만원’이라는 혜택에 넘어가, 오늘은 두 캔만 마시리라 다짐하고는 결국 모두 마시고 다음날 또 늦잠을 잤다. 이런 경험들이 누적이 되면서 나에 대한 사랑도 믿음도 조금씩 잃어갔다.


나는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습관을 만드는 것보다 없애는 것이 나에게는 더 어려웠다.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힌트를 스토아 철학과 기록 스포츠, 그리고 마음 챙김에서 찾았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상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구직 상황에서 자꾸 실패하면 좌절하게 된다. 이때 포기하거나 회피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회피라는 생각이 들면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해 본다. 오픽 시험 보기, 원서를 맞춤화해 제출하기,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의 전환을 통해 여러 차례 실행하고 검토하면, 좌절감과 자기 효능감면에서 심리적 방어막을 설치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고통을 간접적으로 돌파하는 방법이다. 달리기와 수영 같은 혼자 하는 기록 스포츠가 도움이 된다. 신체 활동은 정신 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신체 활동의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이러한 신념을 바꿀 기회를 얻었다. 작년에는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마지막으로, 극복이 어려운 고통이나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우울감에 대해 이야기하자.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해결한다. 마음가짐, 열린 마음, 고통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에게 깨달음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결국 이것들은 성장의 관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과제다. 2023년에는 특히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일터, 사회,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성찰했다 (기회를 빌려 휴식북클럽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충동의 순간이 있다.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일, 하기 싫은 일을 맞닥뜨리면 어느새 핸드폰을 30분- 1시간 보고 있기도 하고, 불편한 일이 예정되어 있는 날 전날에는 침대에 누워 폰을 보거나 맥주를 한 잔 걸치기도 한다. (불편함이 성장에 꼭 필요한 요소라면 합리화는 제일 위험한 악역 같다).


요즘 연습하고 있는 건, 만족 지연과 대체 습관이다. 저녁 늦게 자는 습관이 있다. 저녁에 생산적이면 좋겠지만 대체로 2시간 정도 기억에 남지도 않는 미디어 소비를 하다 자기 때문이다. 매일 2시간, 1년이면 700시간이 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면 외국어 하나를 새로 배워 일상 회화를 마스터할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유튜브 채널용 영상을 70개 이상 만들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글을 700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5시에 일어나기이다. 일어나서 뭐든 하는데, 대체로 저녁 2시간 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이렇게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콘텐츠 구상을 한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와 빵도 여유 있게 먹을 수 있다.

자꾸 되풀이되는 일 중에서 당신의 상습적이고 나쁜 행동에 기여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 점을 자세히 살펴보면 앞으로 다가올 비슷한 상황에 대비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폴 윌리엄스, 트레이시 잭슨, 조은경 옮김, ≪습관의 감옥≫ (판미동, 2018)


유혹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손 만 뻗으면 게임, 술, 담배 등 각종 도파민에 쉽게 가닿을 수 있다. 뭐든 가능한 시대다. 이것을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의지력' 문제가 아니다. 작은 성공 경험을 쌓고, 주변 사람의 올바른 선례를 보고, 미디어를 의식적으로 소비하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이런 자극에 쉽게 노출되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훈련이 아닐까.


우리는 결코 우리가 저지른 실수, 과오, 악행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 폴 윌리엄스, 트레이시 잭슨, 조은경 옮김, ≪습관의 감옥≫ (판미동,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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