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의 힘

최재천, 안희경, ≪최재천의 공부≫ (김영사, 2022)중 한 단락

by 김바리

‘고독'이란 ‘자발적 홀로 있음'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 홀로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고요. 내가 나와 온전히 함께하면서 내 안에 스며든 세상의 요소도 바라보도록 안내하지요. 혼자 있는 시간은 세상과 연결된 적극적 나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시간이 아닐까요?

- 최재천, 안희경 , ≪최재천의 공부≫ (김영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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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했지만 능숙하지는 못 했다. 꽤 오랜 기간 혼자 잘 살아왔다고 착각을 했다. 기숙사, 유학, 자취 경험을 합치면 최소 15년 혼자 살기 경력자였으니까. 되돌아보니 진짜 혼자는 아니었다. 연결의 강도는 제각각이었지만 그곳에 돌아가면 언제나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진짜 혼자가 된 것은 불과 3,4년 사이의 일이다.


나의 저녁 시간은 말 그대로 무의미의 축제였다. 절제를 모르는 시간이었다.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낼수록 침대로 가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몰라 막무가내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혼술을 하고 목적 없는 스크롤을 하다가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 새벽 1-2시 즈음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리곤 잠이 덜 깬 몸으로 부랴부랴 출근했다. 부지런함도 복리라면, 나태함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시간이 쌓여가면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진 나를, 어느 순간 발견했다.


‘대책 없음'. 나의 3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와 같다. 이것저것을 미리 상상해 보기 좋아하기에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계획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삶의 목표가 없는 계획은 모래 위에 세운 누각과도 같았다. ‘왜'라는 이유가 없는 상태로 이것저것 인풋만 늘어났다. 하는 일과 관련이 있으니까, 지금 내 기분을 좋게 해 주니까, 내가 고민이 있는 주제니까, 이런 1차원 적인 이유를 가지고 시간을 썼다. 어느 날 내 주변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순간, 내가 하고 있는 행위들의 의미가 희미해지면서 방향을 잃는 경험을 여러 번 겪으며 조금 더 근본적인 인생의 목적이 필요하지 않은가, 자문하게 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재수생 시절 삶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 음악다방에 오후 3시쯤 들어가 오후 9시까지 않아있었다고 한다. 시 쓰는 척, 음악 듣는 척 쭈그리고 앉아 허송세월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삶의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그래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지만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고 한다. 새로운 걸 생각해 내고 글을 쓰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함께 모여서 해야 할 일도 있지만 혼자서 생각하고 조사하고 읽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인 황동규 선생님은 ‘자발적 홀로 있음'을 ‘홀로움'이라고 불렀다 한다. 최재천 교수는 이 혼자만의 시간을 외롭다고 표현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홀로움이 참 멋진 단어라 한다. 홀로 있기 다음으로 꼽는 우선순위로는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만일 자신이 사회적으로 조금 성공했다면, 그 비결은 시간 관리라고 덧붙인다.


저에게 다들 묻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느긋할 수 있느냐고요. 제 답은 하나죠.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냅니다. 마음에 엄청난 평안을 줘요. 결과물의 질을 높일 수도 있고요.

- 최재천, 안희경 , ≪최재천의 공부≫ (김영사, 2022)



감히 그의 삶에 비교할 수 없지만, 나 역시 삶의 목적의식을 만들고 이를 위한 시간 관리를 하면서 조금 더 행복해졌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삶의 목표를 재정비해보기 시작했고, 비전, 핵심 가치와 같은 것들을 엉성하게나마 적어보기 시작한 이후로 30년 후, 20년 후의 미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상상한 미래가 조금이라도 현실에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 새벽과 저녁 시간을 따로 떼어 두었다. 아침에 운동을 시작했고, 그다음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녁에는 개인적인 커리어 실험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내가 그리는 미래와 비슷한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속한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것을 쌓았고, 이렇게 보내는 매일의 시간이 정말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불과 6개월 사이의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맞는 리듬을 찾아가는 중이다. 새벽 기상, 글쓰기, 운동, 다양한 커리어 실험, 그 중심에는 최재천 교수님처럼 혼자 보내는 시간, 홀로움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늦잠과 무의미함으로 보내왔던 아침의 2시간,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이제 나에게는 그 어느 시간보다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시간이 되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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