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서사원, 2023)중 한 단락
당신이 긴 글을 쓰면 그런 글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서 글을 쓰면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을 만날 수가 있다. 이 얼마나 근사한 사실인가. 오랫동안 꾸준히 글을 쓰면서 우리는, 내 마음과 같은 영혼의 단짝을 만난다.
- 김종원,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서사원, 2023)
뱉어내지 않은 생각, 구체화 되지 않은 상념들은 대체로 파란빛을 띈 채 머릿 속을 둥둥 떠 다닌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어질 무렵 머릿 속을 유영하다보면 그 파란 것들에 발이 채인다. 그것을 건져 올려 버릴라 치면, 슬픔과 분노로 이미 반 이상 차버린 상자를 보고 놀라곤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상자를 비우기 위함이다. 머릿 속에 담긴 정리 되지 않은 덩어리들을 적절히 주물주물 반죽해 뭐라도 만들고 나면 기분이 괜찮아지곤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슬라임처럼 만지면 흐물거리는 덩어리들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그것들을 창고에 박아두었다 혼자서 가끔 꺼내 보곤 했다. (후에 이 덩어리 중 일부는 조금 더 그럴싸한 눈과 코와 팔과 다리를 얻어 세상의 더 많은 이들을 만나기 위해 여정을 떠나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덩어리를 모으고 있는 누군가가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커뮤니티에서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각자의 덩어리를 반죽해 한 아이라도 더 세계를 여행할 수 있도록 다리를 붙여주고 팔을 만들어주려 함께 노력했다.
공감 받고 공감하는 것, 글을 통해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렵지 않게 실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내 가족이 몇 명인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기꺼이 취약함을 드러내고 마음을 나눈다는 것. 함께쓰기가 주는 큰 선물이다.
그렇게 만든 체력 덕분에 이제는 혼자있는 시간에도 제법 형태를 만들어 내보인다. 내가 만든 파랑이들은 각자에게 맞는 신발을 신고 현실이라는 대지에 발을 내딛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모험을 떠난 후 소식이 없다. 아주 가끔 잘 갔다는 소식만을 받을 뿐, 가다가 사고가 났다든지, 도착하지 못 했다든지, 하는 슬픈 소식은 받은 적이 없다.
나의 파랑이들이 만든 글엔 부정적인 댓글이 없다. 왜일까. 내 글들이 익명의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을 정도로 반향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생각해볼 수 있는 다른 이유는 글의 색이 선명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이미 생각한 메시지는 있지만 비난이 두렵고 더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꾸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말하려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이미 스스로 생각한 글을 다 썼지만, 주변의 비난을 염려하거나 더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꾸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사람이 있다. 이 과정이 나쁜 이유는 자꾸 추가하고 수정하면, 앞서 완성한 글의 모든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은 아무런 지향점이 없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사족은 의미를 흐리고 문장을 망친다. 붙어서 좋은 건 통장의 이자뿐이다.
- 김종원,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서사원, 2023)
내가 떠나 보낼 미래의 파랑이들을 위해 필요한 다음 숙제이다. 색채가 옅고 물렁한 형체의 그들을 제멋대로 버무려 그럴싸한 형태를 만들고, 눈과 코와 손과 발을 붙여 세상에 내보내고, 다른 사람이 보내준 파랑이를 맞이하는 것이 지금까지 머리 속을 비우는 방법이었다면, 이제는 좀더 짙은 색채를 가질 수 있게 다듬어 그들이 원하는 목표지까지 잘 갈 수 있도록 설계하고 안내하는 것 말이다.
내가 만든 파랑이에 섞지 않은 색이 아쉬워서, 내가 그들을 보낸 길이 싫어서 돌아서는 사람도 그만큼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더한 색이 맘에 들어서, 내가 택한 그 길이 마음에 들어서 나의 파랑이와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도착할 목적지에서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같은 마음의 영혼의 단짝'이 그들이라면, 그들을 더 많이 만나기 위해서라도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계속 글을 써나가야 할 것이다.
글쓰기는 그날그날 생각한 것을, 그날그날 글로 쓰고, 그날그날 세상에 공개하면서 겪는 두려움과 공포를 통해 배우는 것이지, 단순히 글쓰는 방법과 지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김종원,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서사원,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