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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01. 2024

'있을 수 있는 것'을 없애기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모멘토, 2006) 중 한 단락

할 말이 있으면, 분명하고 자신만만하게 해야 한다.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모멘토, 2006)



"제작할 때 가장 중점에 두어야 할 것은 뭘까요?"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글이죠."



ROI(시간 노동 대비 아웃풋)는 중요하니까, 또 이왕이면 만드는 콘텐츠 잘 만들고 싶으니까 어떻게 하면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까,를 물었던 건데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드라마에서나 들어 봤던 말. 지금까지 딱 한번, 잡지사에서 일을 하며 대행 업무를 하긴 했지만 신입으로서 해야 할 일을 쳐내느라 바빴지,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만족시킬지 고민의 단계까지는 다다르지도 못했었다 (몰랐다고 해야 할까). 


글을 시작하기 막막해졌다. 모르는 분야의 일이었고, 참고할 자료가 있긴 했지만 여전히 감이 안 왔다. 미루기를 거듭하다가 제출일이 다가와서야 일을 소개해 준 지인에게 부랴부랴 검토를 받았고, 논리적인 구조 외에도 수사법 (레토릭)에 관한 피드백을 받았다.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단어는 이런 스타일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어떤 구조인지 명확하지 않다, 와 같은 피드백이었다.


아차차, 그동안 너무 나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인 글쓰기만 하다 보니 상대가 좋아하는 글이 무엇일지 생각을 못 했다. 특히 '기업'이 좋아하는 글이 무엇 일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문장과 단어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는 착각을 했다(네, 하지만 이것은 일기 쓰기가 아닙니다. 일입니다).


비즈니스 목적의 글은,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가진 구조적인 글이어야 한다. 그들은 시간이 없다. 내가 쓴 글의 행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에너지가 없다. 그들이 쉽게 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묻고 싶은 질문, 궁금한 점을 대신 물어봐줘야 한다. 그들이 ‘가려워하는 지점’을 긁어줘야 한다 (밑줄 두 번 긋기).


'돈을 버는 글쓰기'란 이런 것이구나!


지인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후 뿌연 안개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자서전 쓰기, 에세이 쓰기가 아닌, 마케팅 글쓰기, 논리적인 글쓰기, 명확한 글쓰기가 무엇인지 더, 궁금해졌다. 


책 <글쓰기 만보>에서 저자는 책에서 낱단어를 고르는 법부터 단어들을 엮어 문장을 만드는 법, 문장을 단락으로 만들고 상황을 묘사하고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방법을 에세이 형식으로 한 편 한 편에 경험과 함께 녹여내고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는데, 한국인이 “있었다", “것", “수"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쓰는지에 대한 지적이었다.


번역을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 몇 달 동안 그들이 써놓은 글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 세 단어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  “있을 수 있는 것" 단 세 가지 단어를 모조리 제거하기만 하더라도 글이 얼마나 윤기가 나는지 스스로 놀라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모멘토, 2006)


한국인이 많이 쓰는 세 단어에 대해 언급했지만,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가 완곡한 표현을 쓰고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점검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특히 말을 할 때 문장의 시작에 ‘혹시', ‘괜찮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과 문장의 끝에 ‘~같아요', ‘라고 생각합니다' 등의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것들은 모두 상대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쿠션어처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을 글을 쓸 때 그대로 가져와서 쓰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좋게 말하면 글이 말랑해지고 나쁘게 말하면 글의 색채가 또렷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림을 그릴 때도 보면 선을 사용하는 것, 색채를 사용하는 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소극적인지 스스로 놀랄 때가 있는데 단어의 사용하는 방법에서도 그것이 보인달까. 


전달해야 할 메시지에만 치중하다 보면 표현에 대한 검토를 놓치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려 던 말을 여러 겹 쌓아서 보내면 듣는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어렵다. 고로, 어떤 단어를 제거할지도 중요한 건 당연하지만 어떤 단어를 덜 쓸지, 다른 힘 있고 간결한 단어가 뭐가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글이 좀 지루하다 싶으면 내 글에 “있을 수 있는 것”이 몇 개인지 세보자. 아래는 단어 검토와 더불어 나의 글을 검토할 때 참고해 볼 만한 내용이다


1. 육하원칙에 맞게 구체적으로 글을 쓴다.
2. 자신이 써놓은 글에서 ‘있다', ‘것'과, ‘수'를 모두 삭제한다.
3. 고쳐 쓴 글에서 ‘너무’나 ‘같다'처럼 다른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남발하는 단어들을 모두 제거한다. 단어만 달랑 바꾸기 힘든 경우 아예 문장 전체를 바꿔도 된다.
4. 수동태와 영어식 표현도 일부러 찾아내어 고쳐본다.
5. 마지막으로 접속사 또는 그와 같은 기능을 하는 모든 표현을 찾아내어 수리공사를 한다.
6. 이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을 처음 썼던 일기와 비교해 보고, 짧은 자평을 끝에 기록해 둔다. 




물을 먹고 허우적거리며 물과 친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힘과 요령은 몸이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글쓰기는 헤엄치기와 똑같다.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공부가 수영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모멘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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