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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03. 2024

안녕, 내 귀여운 부정적 감정들아

[나위쓰 2기] 감정을 중심으로 회고하는 에세이 글쓰기 3주차



하기 싫었다. 분명 하고 싶다고 시작한 일인데, 무엇을 언제 해야 하는지 눈치를 보았다. 지금 당장 뭘 해야할지 감이 안 오는 일에 대한 찝찝함. 이 때문인지 아니면 습관이 무너진 건지 최근 들어 저녁마다 새벽에 잠에 들고 잠이 들때까지 미디어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날이 잦아졌다. 혹시나 해서 캘린더를 열어보았지만 아직 마법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PMS(월경전 증후군)도 아닌데 잠을 잘 못 이루고 자꾸 집중 못하고 딴짓만 하는 내가 한심했다. 이유를 찾는 데 바빴다.


주말에 한 번, 주중에 한 번, 통화를 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의 회고 기록을 보니 상대와의 통화가 ‘힘들었던 일'로 칠해져 있다. 나는 통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콜 포비아라고 하던데, 비슷하다. 하지만 공포라기 보단, 용건만 간단히 말해주었으면 하는 불편한 마음이 더 정확하다. 텍스트야 내가 시간 날 때 확인하면 되지만 전화는 그게 어렵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게 싫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면 더.


적다보니 깨달았다. 나는 방해 받는 게 싫었던 거였다. 그와의 통화 내용도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타이밍이었다. 다음 스케줄을 앞두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던 중에 전화가 걸려오거나 (주말), 시간 안에 끝내기로 마음먹고 일에 집중하던 찰나에 전화가 걸려오거나 (주중),그리고 그 통화가 누군가에 대한 평가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대한 것으로 30분 이상 이어지는 것.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글로 써보기 전까지는 사실, 최근 들어 내가 리더에게 가지는 감정으로 보아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느꼈다. 괜히 극단적으로 상황을 끌고 가 조직 활동 지속 여부에 대한 고민까지 다다랐다. 그와 동시에 상대에 대해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고 미안했다. 다 좋자고 하는 일인데, 그 사람의 불평을 듣는 걸 힘들어 하고, 주어지는 일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말이다. 감정의 변화가 생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런데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쉬운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찌보면 원인은 정말 사소한, 상황적인 문제였는데 내가 이 일을 드라마로 만들고 있지는 않았는가! 이 어리석은 인간!


한편, 왜 그럼 이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지? 왜지? 하는 생각이 함께 떠오른다. 나는 상대를 미워하고 싶었을까? 싫어지도록 만들 이유를 찾고 있던 건 아닐까? 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다음에 찾아올 갑작스러운 불쾌한 감정에 대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급한 스케줄을 앞두고 있거나, 집중하는 상황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겠다. 그리고 용건만 간단히 전해주길 요청할 것이다. 이는 그가 싫어서가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 사람과 나와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내가 선택해야 할 가장 최소한의 경계가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여전히 예민함을 못 버렸나 싶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많이 둔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당사자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다른 형태로 에너지를 드러내게 되었는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몇 년 전에 비해 미디어를 엄청 하긴 한다 = 과거엔 더 예민 보스였다).



오늘도 부정적인 감정을 돌아보는 글을 썼다. 부정적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좋다. 원인을 찾고 그것을 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긍정적 감정으로만 일주일을 채우고 싶은 건 인간이 가진 끝없는 욕심인 건가. 최근 책 모임을 위해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책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에서 이 부분이 참 와닿았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대로 이상적인 세계에도 신은 필요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 세계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신이 등장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다른 종교, 또 다른 신을 찾아 헤맬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인간을 유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에 더 끌린다. 긍정적 감정은 금방 휘발되는 데 부정적 감정은 오래 남는다. 들여다보면 솔직히 재밌다. 어쩌면 나란 사람이 우울을 즐기는 걸지도 모른다. 조금 변태 같긴 하지만. 그게 나를 더 잘 말해주는 거 같다. 그래서 인정하려고 한다. 나는 부정적 감정이 좋다.


그들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좋다. 화, 슬픔, 미움, 두려움, 불안, 고통. 이런 감정들을 그동안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 또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냥, 내가 나를 돌봐주기 위해 이런 감정을 더 잘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긍정적 감정이 나에 대해 1가지를 말해준다면 부정적 감정은 3~5가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특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에 꿈꾸는 나를 연결 지어서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상대가 부정적 감정을 표현했을 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론은,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의 두려움, 불안, 어쩔 줄 모름, 짜증 남, 화남, 우울, 슬픔의 감정들아.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 도와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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