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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04. 2024

열심히 사는 게 의미 없이 느껴질 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포레스트, 2023) 중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도박도, 기도도, 명상도 도움이 안 된다.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김욱 편역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포레스트, 2023)




소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생각났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한 노인을 살해한다. 그는 자신의 죄악과 사회적 압박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때로는 그 고통 속에서 면죄부를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망상에 불과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정의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현실 간의 충돌을 보여주는데, 이는 쇼펜하우어의 이야기에서 지적된 현대 사회의 우울과 그 끝에 태어난 열광이라는 것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정신이 오늘날과 같이 우울해진 근본적인 원인이 기술의 발달에 있다고 말한다. 기술과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삶은 외형적으로는 더욱 편리해졌지만, 안락함에 도취한 인간은 눈앞에 어떤 문제가 나타났을 때 이성적 고뇌로 치열하게 싸워 극복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도구를 사서 쉽게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우울은 특별한 증세를 보이지 않고 눈에도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핑계로 얼마든지 나태해져도 그 게으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이로 인해 개인은, 우울함에 취해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판단력이 흐려지고, 사회적 인습 전반에 무기력해져 자기 생각과 감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울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생각과 감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망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노력하는 데도 나아지지 않는 나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이미 책 부제목에 잘 나와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하고 말이다.


인생은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 선택이 지혜의 시작이다. 인생의 지혜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중용의 미덕이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김욱 편역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포레스트, 2023)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머리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가슴으론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은, 조그만 일에 기뻐하고 놀라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실망도 슬픔도 미움도 더 자주 느끼겠지만, 그만큼 설렘도 사랑도 더 자주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그의 말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은 죽음을 실제로 보기 시작하면서 시간의 이자가 아닌, 생명의 원금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자연스러운 본성에 의해 사람은 마흔 살이 넘어가면 사람을 싫어하는 성향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성숙하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숙한 나를 보며 매일 자책하고 슬퍼하고 우울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사람을 싫어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고 상처 받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싶다. 그가 말하는 성숙에서 멀어질지라도, 미숙하고 철없는 삶을 살더라도 말이다. 글쎄, 이러다 진짜 불혹의 나이가 되는 순간, 다른 사람처럼 변하게 될지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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