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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는다

[나위쓰 2기] 감정을 중심으로 회고하는 에세이 글쓰기 6주차

by 김바리


합쳐보니 상당한 시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날 과음을 했거나 미디어를 몰아 보고 새벽에 잠든 날의 시간. 무난한 주라고 생각했는데, 자각하지도 못한 현실 도피의 수준이 꽤 높아져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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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과 망각의 세계에 침잠하기 전과 후, 나는 낯선 세계를 경험했다. 하나는 약 2시간짜리 인터뷰였고, 두 번째는 서울 한 번화가에서의 휴식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롭게 시작한 일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나의 행동들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인과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관관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항상 찌꺼기가 남는다. 그 찌꺼기의 이름은 ‘찝찝함'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대답과 내가 하고 싶은 말 사이에 적당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답변을 하다가도 계속 그들이 원하는 답이 무엇일지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 진심이 아닌 말을 하게 되고 문을 열고 나와서는 내가 내가 아니었다는, 이른바 가면을 썼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평가를 받는 게 싫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 번화가를 거닐면서 내가 모르는 세련된 카페와 내가 관심 없는 명품샵들을 여럿 지나쳤다. 그리고 길을 거니는 와중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역사를 나와 인파 속을 헤치며 내 머릿속에 계속 머물러있던 작은 말풍선은, 몇 해전 10월 말의 그 일이었다. 길을 걷는 와중에 나는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타인을 보며 그들에게 비친 나를 보며 왠지 불편했다.


싫다, 불편하다. 이 감정의 농도는 그리 짙지 않았다. 하지만 이 찌꺼기는 투과되지 않은 채 계속 내 안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다. 흔히 감정은 생각에서 비롯된다고들 말한다. 내가 가진 감정에서 출발해 보니 외부로부터 감각한 세계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과거의 스토리가 겹쳐져 있었고 그것에는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치 판단이란 녀석은 고스란히 상황과 공간이라는 맥락 하나만 일치한 곳에 함께 입장해 내 옆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나를 괴롭게 했다.


인터뷰는 앞으로도 열 번이든 백 번이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거의 그림자를 함께 들고 갈 것인가? 내 가치 판단의 잣대라면, 불의의 사고를 겪은 공간은 가지 않는 게 맞는 걸까?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옳고 그름의 틀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울타리가 유효한 걸까?


복잡한 세상이다. 아니, 내 생각이 사는 세상은 복잡하다. 끙끙대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느니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대충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이따금 비집고 들어온다. 사는 동안 고뇌와 번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멍게처럼 뇌를 잃는 것일까?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단계에서 내가 내린 나름의 건강한 답이다.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너무 멀리가 있지 않겠다는 의미다. 왜냐면, 나에게 일어난 몇 가지 일들로부터 느낀 나의 생각과 감정이 결국, 내가 기대한 것과 현실의 그것이 다른 데서 온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고 나의 작은 선택에 큰 우연이 가득 찬 세상임을 계속해서 알아차릴 것. 좋은 운이 생기면 감사하고, 나쁜 운이 생기면 그 고통을 통과하기. 이제 그만 삶을 조금은 가볍게 생각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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