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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24. 2024

기대하지 않는다

[나위쓰 2기] 감정을 중심으로 회고하는 에세이 글쓰기 6주차


합쳐보니 상당한 시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날 과음을 했거나 미디어를 몰아 보고 새벽에 잠든 날의 시간. 무난한 주라고 생각했는데, 자각하지도 못한 현실 도피의 수준이 꽤 높아져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도파민과 망각의 세계에 침잠하기 전과 후, 나는 낯선 세계를 경험했다. 하나는 약 2시간짜리 인터뷰였고, 두 번째는 서울 한 번화가에서의 휴식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롭게 시작한 일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나의 행동들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인과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관관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항상 찌꺼기가 남는다. 그 찌꺼기의 이름은 ‘찝찝함'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대답과 내가 하고 싶은 말 사이에 적당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답변을 하다가도 계속 그들이 원하는 답이 무엇일지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 진심이 아닌 말을 하게 되고 문을 열고 나와서는 내가 내가 아니었다는, 이른바 가면을 썼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평가를 받는 게 싫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 번화가를 거닐면서 내가 모르는 세련된 카페와 내가 관심 없는 명품샵들을 여럿 지나쳤다. 그리고 길을 거니는 와중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역사를 나와 인파 속을 헤치며 내 머릿속에 계속 머물러있던 작은 말풍선은, 몇 해전 10월 말의 그 일이었다. 길을 걷는 와중에 나는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타인을 보며 그들에게 비친 나를 보며 왠지 불편했다.


싫다, 불편하다. 이 감정의 농도는 그리 짙지 않았다. 하지만 이 찌꺼기는 투과되지 않은 채 계속 내 안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다. 흔히 감정은 생각에서 비롯된다고들 말한다. 내가 가진 감정에서 출발해 보니 외부로부터 감각한 세계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과거의 스토리가 겹쳐져 있었고 그것에는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치 판단이란 녀석은 고스란히 상황과 공간이라는 맥락 하나만 일치한 곳에 함께 입장해 내 옆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나를 괴롭게 했다. 


인터뷰는 앞으로도 열 번이든 백 번이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거의 그림자를 함께 들고 갈 것인가? 내 가치 판단의 잣대라면, 불의의 사고를 겪은 공간은 가지 않는 게 맞는 걸까?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옳고 그름의 틀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울타리가 유효한 걸까?


복잡한 세상이다. 아니, 내 생각이 사는 세상은 복잡하다. 끙끙대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느니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대충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이따금 비집고 들어온다. 사는 동안 고뇌와 번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멍게처럼 뇌를 잃는 것일까?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단계에서 내가 내린 나름의 건강한 답이다.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너무 멀리가 있지 않겠다는 의미다. 왜냐면, 나에게 일어난 몇 가지 일들로부터 느낀 나의 생각과 감정이 결국, 내가 기대한 것과 현실의 그것이 다른 데서 온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고 나의 작은 선택에 큰 우연이 가득 찬 세상임을 계속해서 알아차릴 것. 좋은 운이 생기면 감사하고, 나쁜 운이 생기면 그 고통을 통과하기. 이제 그만 삶을 조금은 가볍게 생각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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