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리 Mar 26. 2024

행복한 일이라는 환상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은행나무, 2012) 중

나는 시먼스의 회사를 나오면서,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 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 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은행나무, 2012)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런 태도는 그 이후 2천 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믿음이 르네상스가 되어서야 바뀌기 시작했다 말하는데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전기에서 실용적인 활동의 영광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말한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면서 저자는 ‘직업 카운슬러' 즉 일과 충족감이 동의어가 되도록 보장하는 방법을 찾는 데 헌신하는 전문가를 만나 그들과 동행하며 깨달은 점을 이야기한다.


그가 함께한 상담사 시먼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흔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착각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말이다. 반면, 그들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진정한 ‘소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시먼스는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동기와 성격>에서 한 말을 좋아하여, 변기 위에 써붙여놓기까지 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은행나무, 2012)


상담사 시먼스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관해 직접 이야기하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더 큰 충족감을 주는 직업으로 그들을 안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들이 첫 번째 원칙들로 돌아가, 그들을 기쁘게 하고 흥분시키는 관심사들을 중심에 두고 자유연상을 하도록 돕는다.


저자가 관찰한 시먼스는 다른 사람의 아주 미세한 감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데 일생을 바치는 사람이었다. 상담 과정을 지켜보며 저자는 이제야 보통 인간의 일상적 혼란이 마침내 그들이 받아 마땅한 ‘꼼꼼한 배려'를 받을 수 있는 포럼을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저자는 상담사 시먼스의 자신감, 능력, 의지를 북돋는 동기부여 훈련 현장을 지켜보며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이유가 현대 세계의 성취와 관련된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는 진실때문임을 깨닫는다. 


저자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에세이를 언급하며, 베버가 괴테에 대해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창조적이고 건강한 인격의 예라고 묘사한 이야기를 전한다. 천 년에 한 번 있는 ‘예외’의 일을 ‘원칙’으로 삼게 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것을 이루지 못한 개인이 느끼는 좌절감은 단순히 실패의 감각을 넘어 주류로부터 소외되는 기분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운명에서 갈망과 오류를 위해 마련된 자연스러운 자리를 부정하여, 우리가 경솔하게 결혼을 하고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 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은행나무, 2012)


꽤 오랜 시간, 나의 성취가 곧 나이고 일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내 정체성이라고 믿어온 시간이 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괴테가 될 확률보다 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한편, 이것이 가져다주는 감정은 과거와 지금이 조금은 다르다. 


일은 일이고, 나는 나다. 일하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생산성보다 더 큰 사람이다. 그렇기에 만일 괴테가 되지 못할지라도 실패의 감각 이상으로 사실을 확대하여 나를 파괴하고자 하는 마음은 갖지 않도록 하자.  조금 더 다정한 마음으로 내 실패를 바라보자, 이것을 중심에 두고 단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그러다 보면 어떤 ‘예외'가 나에게 펼쳐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대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