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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27. 2024

나는 단백질이다

카밀라 팡,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푸른숲, 2023)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인류를 설명하는 과학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 과학은 보통 사람들이 본능, 어림짐작, 가정에 기대는 영역에 명확성을 부여하고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 

- 카밀라 팡, 김보은 옮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푸른숲, 2023)



인간에게 물 다음으로 제일 많은 물질은 단백질이다.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은 단백질의 역할 덕분에 움직인다. 소화를 돕고, 질병과 싸우고, 몸속에 산소를 운반하고, 피부, 머리카락, 근육, 그 외 주요 기관에도 필수 요소이다. 단백질에는 수많은 기능이 있고 그 복잡하고 다양한 활동이 잘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생존하고 있다. 


비결이 무엇일까. 


단백질은 인간처럼 환경에 반응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의사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고 한다. 인간과 다른 점은 자신을 환경에 ‘끼워 맞추는'방식이 아니라 대조되는 ‘유형'의 상보성을 수용해 다양한 화학반응을 활용하고 서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달성한다는 점이다.


다른 것이 환영받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계. 오랫동안 인간의 세계는 비슷해야 살아남는 곳이었다.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해야 소수의 권력이 대중에게 힘을 휘두를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이런 방향으로 교육도 문화도 발달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간 세계는 어떤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걸까? 통일성보다 다양성을 존중받는 세상을 원한다면 유사한 것보다 다름을 더 잘 끌어안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과학을 이해하며 자신이 가진 자폐스펙트럼 장애, ADHD, 불안 장애가 대다수의 생각처럼 장애물이 아니라, 귀중하고 독특한 관점을 부여하는 초인적인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에게는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독특한 관점을 부여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단백질은 또래 압력이나 감정 기복을 겪지 않으므로, 인간 행동의 이상적 모델로 볼 수 있다. 단백질은 에너지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행동하므로 당면한 과제에 초점을 맞추며 감정이나 자의식 때문에 산만해지지 않는다. 미세분자의 판단에 무관심하기에, 동료에게 맞추거나 균일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다양한 기술을 이용하고 개발할 수 있으며, 차이의 힘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팀을 이룬다. 

- 카밀라 팡, 김보은 옮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푸른숲, 2023)


저자는 ‘무조건 차이를 존중하자!’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단백질을 사례로 들면서 ‘다양성'과 ‘독자성'이 어떻게 그들에, 인간의 몸의 생존에 도움이 되도록 진화해 왔는지를 비교하며 살핀다.


본질적인 면에서 유사성뿐만 아니라 행동과 발달 과정의 유사점의 관점에서 단백질과 인간을 분석한 부분이 재밌었다. 단백질이 최초로 갖는 ‘스파게티'구조를  아기로, 시간이 지나 아미노산 서열과 환경에 특화한 고차원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을 사춘기와 성인시기로 비유해서 나타낸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단백질의 최종 단계를 보여주는 3차 구조 이후, 그들끼리 형성할 수 있는 모든 대안적인 형태와 결합을 4차 구조로 일컫는다. 이 단계에서는 성인이 된 단백질들이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고, 몸의 엔진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것을 파악해 각기 다른 역할을 한다. 


저자는 단백질이 개인이 아닌 집단의 행동이라는 측면에서도 강점을 갖는다 말한다.  종종 타성에 젖어 개인적인 성장에 대한 요구를 잘 수용하지 못하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저항하는 인간과 달리 단백질은 감정적 충동이 일으키는 혼란 없이, 혹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걱정 없이, 객관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식에 따라 자신을 자유롭게 조직하기 때문이다.


단백질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성에 젖지 않고 더 큰 대의명분을 위해 유연하게 변화하고 적응하는 것. 그 속에서도 나의 유일한 면을 잘 지켜내는 것. 그러려면 우선 감정 다루기 훈련부터 더 열심히 해야겠지요.



단백질 팀은 모두 행동할 뿐, 거기에 정치는 없다. 그들을 그저 주어진 임무를 끝마친다. 

- 카밀라 팡, 김보은 옮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푸른숲,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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