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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28. 2024

유혹이 지나가도록 두다

페마 초드론,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불광출판사, 2023)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경험하려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 진실이든 그것을 알아보는 정도의 현명함을 지녀야 한다.

- 페마 초드론,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불광출판사, 2023)



어디까지가 바닥일까.


지난 밤 떠올린 생각이다. 저녁에 하려던 일을 다 제쳐두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실험에는 실패가 뒤따르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프다. 기대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기대를 해버렸다. 약간의 좌절을 겪은 후, 또다시 시간만 허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 12월 부터 올 3월까지 새로운 형태의 커리어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실험의 계획, 그리는 이상적인 미래는 완벽하지만 현실을 마주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내 실험을 실행하게 해주는 실험실을 찾기가 힘들다.


창작과 근로, 작은 기업의 미디어 프로젝트, 그리고 작지만 사업까지, 커리어 실험을 위해서 실험실이 여러 개 필요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안정적인 근로를 위한 실험실을 찾지 못 하고 있다.


몇번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 기회는 사실 상대방이 그린 그림과 내가 그린 그림이 달라서 그랬던 것이기에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에  어영부영 넘어가서? ‘자유'와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를 다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 해서?


이상적인 근무 환경을 그리고 그것이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칙을 마주했을 때, 진실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렇게 회피하는 나의 모습을 현명하지 못 하다고 생각해 자책했다.


가족과의 통화가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어느 정도 자신이 마주한 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찾아 살아가면 된다고. 열심히 살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상실감을 느끼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말이 있다. 가장 먼저 나를 아껴줘야 했을 나는 자꾸만 나를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하는 생각의 경향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자, 라고 마음 먹다가도 나만의 상상력으로 밑그림을 그려놓은 그림에 생각보다 탁한 색의 색이 칠해질 때면, 틈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급급하다.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신의 일기장에 “모두의 에고가 사라졌을 때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라고  적었다. 삶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번뇌를 나 혼자 끌어안고 고통스러워 하기 보다는 나의 번뇌를 알아차리고 에고와 씨름하지 않고 더 큰 목적을 위해 붙잡지 말고 흐르게 놓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초콜릿 한 박스를 다 먹고 와인 한 병을 통째로 마시면 처음에는 안락함을 느끼지만, 최초의 만족감이 사그라지면 몸과 마음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습관의 유혹이 그냥 지나가도록 놓아둘 수 있다면(물론 어려운 일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이전보다 나은 결과가 생길 것이다.

- 페마 초드론,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불광출판사, 2023)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습관의 유혹은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극단적 사고다.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을 믿고 투자해야 한다는데 나는 변화를 원하면서도 믿지도 않고 시간도 에너지도, 재정도 투자 하지 않고 있다


너무 쉽게 유혹에 굴복하는 나의 일상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만족감이 지나고 불편함을 느낄 때 자책하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습관의 유혹을 지나가도록 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 습관의 시작은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말로 바꾸기 (혹은 놓아두기)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이야 말로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더 많이 축하해주고 기뻐해 줘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 새로운 믿음과 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계속 되는 안일한 번뇌의 굴레를 깨뜨리고 지혜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나만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옳든 고르든, 내가 옳다고 믿으면 되니까.


다시 커리어 실험 이야기로 돌아와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불편한 이야기를 시도했다는 점, 이야기를 나눈 후 결국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상심했지만,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그동안의 시도가 도움이 되었다.그게 아니라면 어영 부영 넘어가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며 나 혼자 더 깊은 늪으로 침잠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이야기이자 해야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나쁜 습관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평소의 경향성으로 두고 후회할 것이냐, 아니면 그 욕구를 알아차리고 흘러가도록 둘 것이냐 와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고 나를 인정하고 보듬어 주는 작은 행동을 계속 한다면 분명 더  능숙하게 불편한 이야기 (해야할 이야기)도 해낼 것이고, 그 이야기가 내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더 믿어야 한다.



삶과 죽음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괴로움의 뿌리에는 세상과 분리된 특별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감각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번 생을 사는 동안 이런 환영의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되어감의 바르도를 지나는 동안에도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 페마 초드론,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불광출판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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