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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y 08. 2024

정어리 (떼)가 되자

츠타야의 문화 혁신, 그 바탕에 있는 가치관



이케부쿠로에서 카마타까지는 편도로 거의 2시간이 걸렸습니다. 야마노테선을 타고 중간에 두 번 환승을 해야 갈 수 있었죠. 유학시절 통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학교에 열심히 가지 않았어요. 거리도 거리였지만, 솔직히 당시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 했거든요. 대신 학교만큼이나 자주 드나들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네 도서관과 츠타야였는데요. 영화와 음악에 푹 빠지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 갈증을 동네 DVD 렌탈점에서 완전히 채우지 못했기에 조금 거리가 있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종종 츠타야 이케부쿠로점까지 CD를 빌리러 가곤 했습니다.



일본 렌털샵 풍경,  출처. 123RF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이곳이 20대의 저에겐 인생 교양 학교 같은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장소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비욕, 레드 핫 칠리페퍼스, 비틀스, 스파이크 존스, 온다 리쿠와 같은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당시 주로 읽는 책이라곤 자기 계발서, 보는 영화라곤 일본 로맨스 코미디 영화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오프라인 공간의 매력 덕분에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장르의 영화와 책, 음악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으니까요.


‘츠타야'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면  T카드도 함께 머릿속에 그려지는데요. 편의점이나 이런저런 가게 대부분에서 츠타야 포인트를 적립하고 사용할 수 있었어요. DVD 렌털샵의 포인트카드로 다른 가게에서 포인트를 적립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 당시 굉장히 낯설어서 ‘이거 생각해 낸 사람은 천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천재성은 몇 년 후 츠타야 다이칸야마 점을 방문했을 때, 서점 내 스타벅스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되었고요. 이런 기발한 기획을 하고 서비스를 만들어온 츠타야의 수장, 마스다 무네아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2012년만 해도  서점과 스타벅스가 함께 있는 것이 굉장히 생소한 일이었다,  출처. 트립어드바이저(장윤정)


오늘 읽은 챕터 <결結 - 회사의 형태는 메시지다>에는 ‘고객 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 조직이, 조직 내에서 개인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형태로서 조직을 정어리 떼에 비유합니다. 정어리는 한 마리일 때는 한없이 나약한 물고기이지만, 그 무력함을 보완하기 위해 떼를 지어 몰려다니죠. 그러다 대형 물고기에게 습격을 당하면, 정어리 떼는 그 자체로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양 집단을 유지한 채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습격을 피합니다. 한 마리, 한 마리 각각 독립된 개별 존재이고, 무리를 통솔하는 리더가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무리 안에서 통일된 행동을 취하며 집단을 유지합니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것이야 말로 앞으로 비즈니스가 단위별로 갖춰야 할 모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조직 안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이 유기적으로 작용할 때에만 가능하다. 원심력만으로는 조직이 흐트러져 통합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또 구심력만으로는 조직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집단이 되어 버려 효과적인 기획을 내놓을 수 없다. 기획 회사에 적용한다면, 원심력이 향하는 방향은 고객이고 구심력이 향하는 방향은 동료다. 사원들 각자가 고객에게 향하는 힘과 동료에게 향하는 힘을 동등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정어리 떼 같은 기동성을 구현할 수 있다.

-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자본론≫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조직의 형태를 고민할  때 수직적이냐, 수평적이냐의 이분법적 틀 안에서만 고려하기 마련인데 그 생각의 틀을 벗어나게 해 준 새로운 관점을 주었거든요. 정어리 떼처럼, 혼자서도 개인은 개인답게, 함께 있을 때는 더 큰 하나의 집단이 되는 것.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스다 무네아키는 ‘자유와 사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신뢰나 공감이라는 말로 치환해도 좋다고 덧붙이고요.  



안으로는 신뢰를 기르고 밖으로는 공감의 안테나를 놓치지 않는, 그런 가치관을 보유하고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츠타야스러운(휴먼 스케일)' 조직의 사원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글을 마무리하는데요. 한 장을 다 읽고 나서 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동료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인가', ‘나는 고객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하는 기획자인가’ 하고요. 완전한 ‘네'에 다다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을 할 때마다 항상, 이 질문을 계속 잊지 않고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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