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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y 27. 2024

 '행복'이 아닌 '깨어있음'으로

≪밤의 사색≫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를 되찾는 헤세의 지혜



<데미안>을 읽었습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고 느낀 사람들이 인생 작가로 꼽는 헤르만 헤세를 곁에 두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헤르만 헤세의 지혜에 가닿기엔 아직 제가 많이 부족했던 걸까요. 그가 들려주는 치유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속 서재 창고 한편에 고이 넣어두어 왔지요.


월요일 아침, 일상이 버겁다는 생각이 제정신을 잠식하려 할 때쯤, 그의 이름이 비눗방울처럼 살포시 떠올랐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던” 그는 어떻게 정신의 족쇄로부터 벗어나 위안과 안식, 작은 기쁨, 사랑의 위대함 같은 것을 깨닫게 되었을까요?



책 ≪밤의 사색≫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작가였던 헤르만 헤세가 살아가며 사랑하며 사색했던, 그중에서도 힘들고 고통스럽고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을 치유의 언어로 정갈하게 길어 올린 산문과 시편들을 모은 책입니다.


오늘 읽은 <외로운 밤>은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특별히 행복해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했던 것 같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행복과 불행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행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받아들이고, 좋고 나쁜 일을 겪으며 내적 실질적 운명을 정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의 인생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적 운명은 신에게 달렸지만, 내적 운명은 오로지 자신의 작품이었습니다.  


인생은 암울한 밤 같지만, 번개처럼 찾아오는 짧은 행복의 순간이 있어 견딜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창조적 순간이 바로 축복의 때이자 존재와 하나 되는 시간이라고요. 그리고 그는 이 한 가지만큼은 확신했습니다. 그 축복의 순간에 이르는 아픔이라도 견딜 만하다는 사실을요.


아무튼 나는 삶을 행복으로 보지 않고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오로지 깨어 있는 의식을 통해서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이자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대한 많은 행복을 얻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삶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최대한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고자 한다. ‘권태로운 삶'도 하얗게 불태우듯 살아내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려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또한 이미 결정된 것의 확고부동함을 잘 알기에 변하지 않는 선과 악에 저항하려 애쓰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 (반니)


저는 이 문단이  참 좋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그 의미를 되찾기 위한 목표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이든 고통이든 삶이 주는 모든 것에 ‘깨어있는 것'이라는 관점의 변화가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두 기둥이자 삶 전체인 행위와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힌트를 얻는 대목이었습니다. 


헤세가 이야기하듯, 고통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더욱 강인하게 만듭니다. 고통을 잘 견디고 이겨내는 법을 배우면, 인생의 절반을 이미 극복한 셈입니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배우는 법을 터득하면, 다음에 닥치는 시련에도 보다 겸허하고 열린 자세로 임할 수 있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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