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키팅,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다산초당, 2024)
자기계발, 심리학, 철학, 종교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며 삶의 태도와 관점의 지평을 넓혀온 저에게 최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삶을 어떤 태도로 마주할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차에, 광화문 교보문고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눈에 띄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입니다.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 책은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물리학자 9명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각 장에서 물리학 이야기는 단 2쪽에 불과합니다. 대신 저자는 그들의 과학적 업적보다 삶의 지혜와 통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읽은 <겸손이 더 나은 물리학자가 되게 한다>는 눈에 띄는 성과를 빠르게 내지 못 한 것에 대해 조바심을 느끼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은 2004년 데이비드 그로스, 데이비드 폴리처와 함께 “강한 상호작용 이론에서 점근적 자유성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프랭크가 31년간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받지 못했던 상황 앞에서 보여준 인내심과 겸손함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프랭크는 디팩 초프라 같은 뉴에이지 정신적 지도자에게 자기 책의 추천사를 써달라고 할 만큼 , 신과 영성처럼 과학자가 말을 아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으며 심지어 즐기는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유대·기독교 전통은 우리처럼 20~21세기 미국에서 자란 이에게는 자신의 일부죠. 그걸 무시하거나 얕보고 낙인찍으려 하는 건 자기 팔을 잘라내는 거나 다름없어요. 정말 그런다면 문화적 토대를 잃는 거죠. 세상엔 과학이 답하지 않지만 종교를 통해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있어요. 과학은 다양한 선택을 했을 때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식견을 주고, 그 수준에서 일종의 지혜를 안겨줄 수 있죠. 그러나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또는 뭐가 옳은지, 뭐가 좋고 나쁜지와 같이 다른 범주에 속한 걸 최종적으로 결정할 순 없어요.
- 브라이언 키팅,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다산초당, 2024)
이 부분에서 프랭크의 관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분야의 '옳음'이 반드시 기존 분야의 '틀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통찰력 있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프랭크는 전통을 단순히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지식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열린 자세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헤겔의 변증법이 떠올랐습니다. 프랭크의 관점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정)과 그 반대 개념(반)을 포용함으로써, 양자의 한계를 초월하는 더 높은 차원의 통합(합)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는 우리의 사고 지평을 넓히고, 더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를 가능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니 지금 맞닥뜨린 문제가 있다면 더 큰 합(진테제)을 구하기 위해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려고만 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하려 애쓰고, 그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