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아저씨는 분수의 곱셈을 안 틀리고 잘하셨을까?
나에게 피아노란 젓가락 행진곡을 치다 양손 들어가기도 전에 집안 사정으로 인해 더 배우지 못 한 악기. 기숙사 피아노실에서 양손가락을 유려하게 움직이며 연주하는 친구를 부럽게 쳐다보며 들었던 악기. 나름 한이 서려 있는 이 피아노에 대한 한을 최근에 드디어 풀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하면 무언가 대단한 각오를 가지고 임한 것 같지만 사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성인 취미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음악노트를 샀고, 높은 음자리표를 그리게 되었다. 중학교 음악시간 이후 처음이 아닐까? 그리고 이제 딱 두 달 반이 지났다.
선생님이 지정해주는 곡과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중심으로 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화음 이론을 배우고 있는데, 숙제로 선생님이 노트에 적어주시는 장조, 단조의 3도 화음을 그려간다. 이주 정도 계속하고 있는데, 이 화음 그리기가 묘하게 산수 연산하는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3도 화음을 맞히기 위해서 건반의 한 음 한 음을 보며 온음 두 개, 온음 세 개 반 을 계산하며 플랫과 샵을 그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암산과 연산이 약한 나 같은 사람은 일단 건반을 쭈욱 그려놓고 첫 음부터 반음씩 세어 나가면서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 자칫 반음을 더 세어주거나 덜 세어주면 화음 그리기에 실패해버리고 만다.
'반음의 수 세기'가 되어버린 이 화음 그리기 숙제를 하다 보니, 자칫 딴생각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전체 음의 조화를 망치게 되어버리는구나 싶은 것이, 어느새 악보 위에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 데도 잔뜩 긴장하게 되어버린다. 실수 하나에 잔뜩 긴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화음 이론과 수학 연산이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5학년 아이와 수학 공부를 같이 하고 있다. 최근에 여러 가지 분수의 곱셈을 다뤘는데, 이게 선생님이 되어가지고 오답이 꽤나 나와서 민망했다(물론 학생은 나의 오답 사실을 모른다).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고 약분을 하고 다시 대분수로 바꿔주고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에서 순서를 바꾸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정답을 체크할 때 내 답과 문제지 답이 다를 때 그 끔찍한 기분은(?)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내가 어디서 틀린 거지 하는, 나의 좌뇌에게 화가 나고 미안하고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분이 화음 숙제를 할 때도 거의 흡사하게 드러난다.
두 번째 화음 숙제를 해갔을 때쯤 피아노 선생님에게 숙제를 하다 보니 수학 연산 숙제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흘려들을 만도 한데, 선생님은 적극적인 맞장구를 쳐주셨다. 그러면서,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음악의 이론을 만들었다며, 내 생각이 맞다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나는 그냥 비유를 한 것이었는데 정말로 수학이랑 음악이랑 직접적인 관련이 있단 말인가? 왜 그걸 난 서른넷이 되어서 5학년 아이와 분수의 곱셈을 약분하다 오답을 내고서야 알게 되었는가?
신기하다 신기해. 세상의 규칙은 신기하고도 오묘하다. 안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 모르는 것들이 많고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 것들 사이에 어떠한 일련의 관계성이 있고. 이런 것들이 참 신기하다 신기해. 재미있다. 세상을 알아가는 게 정말 재미있다. 선생님 덕분에 나는 세상의 이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 아저씨가 갑자기 더 멋있게 느껴졌다. 음악도 잘하는 사람이라니.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한 가지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여러 가지 색다른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을 잘 동경하는 편이다. 약간 재능 부자에 대한 동경이 있달까. 그리고 요절하는 분을 좋아하고, 작품에서 동심이 느껴지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요절은 이미 글렀지만).
그러고 보면 세상은 아이의 진로나 한 사람의 꿈이나 재능을 논할 때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쉽게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수학이 약하면 '너는 문과를 가야 해.'라든지, 예체능을 잘하면 공부는 못할 것이라든지 하는 쉬운 판단 말이다. 사실 음악 이론을 잘하고 수학 연산을 잘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맞다.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화음 숙제를 어려워하는 것을 연산 탓으로 돌리고 싶은 변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중이다. 음악적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산이 어려워서 화음 이론을 어려워하는 겁니다 여러분, 예. (험험)
학문 분야마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던 것들 사이에 유사성이 보이기도 하나보다. 그러한 면에서 업무를 대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아이와 공부를 할 때도 '당신은 이것에 강하고 이것에 약해.' 등의 쉬운 사고 편향을 경계해야겠다. 연산이 약해도 수리 사고력이 강한 아이도 있고, 외국어 말하기에 약해도 듣기와 읽기에 강한 아이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고 피타고라스 아저씨의 음악 이론을 진하게 살펴봐야지. 그리고 수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음악가로서 피타고라스는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몸소 느껴봐야겠다. 매력적인 사람의 덕질은 언제나 두근거리고 즐거운 일이다. 오늘도 행복한 덕질외길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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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일에 노션에 작성했던 초안을 그냥 두기 아까워 (?) 약간 수정하여 업로드합니다.
'1년 반 전에는 이런 생각을 참 진지하게 하고 있었구나' 하며
스스로 귀여워 하는(?) 22년 4월 18일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