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방향으로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나의 인연(이라 하고 싶고 엮이고 싶다) 이라 함은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관계성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 원작의 OOO’ 이런 것은 꼭 챙겨봐야 하기 때문에 보게 된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가 너무 좋았고, 그래서 감독의 전작들을 보았고, 에릭 로메르 같기도 하고 홍상수 같기도한, 익숙한 듯 새로운 연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우연과 상상> 이 개봉하거든 챙겨 봐야지’, ‘혼자 봐도 좋지만 이 영화 왠지 그녀를 떠올리게 하네’ 이런 전혀 연관성 없는 말풍선들로 그녀에게 제안을 했고, 제안을 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감독의 GV가 있는 상영을 그녀가 발견했다! 이 우연! 이것은 어쩌면 운명! (과도한 흥분)
영화 속 류스케 감독의 연출 방식에서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우연한 상황 전개 속에서 인물 간에 갑작스러운 정서적 거리의 압축이 일어나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인물들의 ‘솔직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류스케 감독의 연출 의도처럼, 솔직함을 통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타자의 세계는 더 넓어지고, 그로 인해 나와 타자의 거리는 더욱 좁아진다. 이는 단순히 극 중 인물 간의 거리뿐만 아니라 관객과 스크린 속 인물 간의 정서적 거리에도 해당한다. 어색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어느 순간 하나의 솔직함이 등장하고 나면 이윽고 둘 간의 내적 친밀감은 조금 더 두터워져 있는 그런 상황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종종 마주한다. 예를 들어 딱히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던 대화 속에서 우연히 끄집어낸 과거의 이별 이야기가 어째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비밀을 말해버렸을 때 상대방도 같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이 솔직함이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 관심, 그리고 직접적 대립. 실리콘밸리의 리더십을 다룬 한 책에서의 하이라이트 단어이다.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적으로 찾아가 그의 문제점을 언급해주면서, 그 문제점이 본인이 겪어보니 곤란했던 경험이었다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렉스라는 친구가 지퍼가 열린 모습을 봤을 때, 알렉스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알렉스 너 지퍼 열렸어.”라고 말하는 건 직접적 대립과 개인적 관심의 결과인 ‘완전한 솔직함’이며 이것이 올바른 피드백 방법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게 의견을 말할 때 관심을 가지고 솔직한 태도로 임한다는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읽힐 수 있을 터. 그런데, 상대방이 이 개인적 관심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그리고 직접적 대립의 맥락에 본인이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옮기거나 혹은 자신의 추측성 발언을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예를 들어 “내가 OO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의 이런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라고.” 식의 발언이 과연 ‘완전한 솔직함’의 맥락 안에서 해석될 수 있는, 좋은 피드백이자 대화일까?
모든 대화에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스몰토크라고 해도 말이다. 스몰토크는 스몰토크 나름대로 목적이 있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그 장소에 있는 사람과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의도. 이러한 맥락에서 완전한 솔직함이라는 범주 안에 넣고자 하는, 누군가의 말을 옮기는 행위를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솔직함’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 솔직함이 그 힘을 발휘하는 가장 좋은 조건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나와 상대방, 둘 간의 압축된 환경 안에서 나누는 대화 속 솔직함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연인 간에 상대방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솔직한 대화. 그리고 그 솔직함이 타인을 향한 피드백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내면과 생각 등을 표현하는 발화적 관점에서의 솔직함. 말하자면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자신에 관한 이야기. 그다음 아름다운 솔직함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 바꾸어 상대방의 머릿속에서 나온 나에 대한 이야기. 여기까지가 솔직함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솔직함의 미덕에 포함될 수 있을까? 어떠한 미덕에 포함될진 몰라도, 일단 ‘솔직함’이라는 단어 속에는 위의 의미는 넣을 수 없을 것 같다. 최소한 나의 국어사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