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에 지친 내가 스토아철학에 빠져든 이유
스토아 철학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시작은 아마도 애덤 스미스 철학의 정수를 다룬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비롯하여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엑셀런스> 등 에세이로 둔갑한(?) 자기 계발서를 읽었던 것이 계기인 듯합니다.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와 같은 철학자의 이름이 그들의 인용구와 함께 등장하였고 감명을 받아 좀 찾아보니 다들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분들이시더라고요.
무려 고대 사람들의 지혜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이유는 뭘까 싶었는데 최근에 읽었던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의 서문에 보니 당시 그리스는 로마에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도 지배를 받던 때라서 그리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몰두할 수 있었던 영역이 윤리와 도덕 등 개인의 삶의 영역이었다고 하더군요. 스토아 철학의 핵심 중 하나랄까 에픽테토스가 강조하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신경 꺼!’라는 메시지는 어쩌면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되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죠.
지금도 당시와 환경만 다를 뿐 개인이 처한 상황은 비슷한 것 같아요. 불확실성이 너무 많고 변화가 빠른 환경에 일일이 맞춰나가려 하다 보면 자꾸만 자신을 갱신해야 하는데, 이게 또 쉽지 않잖아요. 상황에 맞추려 하다 보니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르겠고 주변에서 주식하라 하니 나도 투자는 하는데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의 행복에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고, 삶은 점점 더 팍팍해져만 가는데 ‘네 나이에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는 어른들의 조언도 조언 같지 않고 잔소리로만 느껴지고요.
자, 많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요?
새해를 맞이하여 산뜻한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가 엄마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꿈꾸며 짐을 챙긴 저는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과제와 시작해야 할 과제 러시에 허덕이느라 지금 이 시간 까지도 노트북을 들고 무언가를 싸내고(?) 있습니다. 고향 집에서도 온전히 휴식하지 못하고 부담감을 안은 무게만큼 가방의 무게도 무거워져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엄마와 대화를 한 시간도 거의 없고 각자의 할 일을 했지요.
그 짧은 대화 중에도 오고 간 내용은 서울에 살기 어려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주공아파트가 있다는데 그런 데 알아보라며, 우리 집 애들은 왜 그런 걸 부지런히 알아보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잔소리였어요.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토론, 엄마에게는 말대꾸로 여겨지는 두 사람의 대화요.
엄마의 시선에는 그럼 서울에 사는 집 없는 청년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왜 그들이 서울에 집 없이 사는지,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는지, 저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습니다. 결국 대화는 ‘요즘 젊은 애들은 이렇다’로 향해 갔고, 저도 그 청년 중 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윽고 좀 슬퍼졌어요.
엄마와 나는 언제부턴가 세상살이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면 전화기 너머 마치 60초 폭탄 타이머라도 설정한 듯 급하게 서로를 응원하며 대화를 마무리하거나, 얼굴을 마주 볼 땐 심도 깊은 토론이자 말대꾸 대화로 “너랑 대화하면 기분이 나빠.” 로 결말을 맺게 되는 것인지. 나는 엄마를 기분상하게 만들려고 엄마와 대화를 하는 걸까요? 그런 걸까요?
무엇보다 엄마의 말대로 그렇게 노력만 하면 되는 세상인데 노력을 안 하고 있는 게 문제라면, 나는 지금껏 노력을 안 해서 서울에서 집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애초에 서울에서 집이 있는 삶을 살아야 행복한 청년의 삶인 걸까요? 내가 세운 행복의 기준을 흔들어 놓는 엄마와의 대화는 나를 매번 침울하게 만듭니다.
엄마가 챙겨주신 삼시 세끼를 야무지게 먹고, 이튿날 먼저 교회로 나서는 엄마를 배웅하고 잠시동안 홀로 집에 앉아 티브이를 틀어놓고 공상에 잠겼어요. 어제저녁부터 이렇게 전기장판 뜨뜻한 이불속에서 평소엔 즐겨보지도 않던 예능을 보느라 채널을 돌려가면서 웃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윽고 생각했어요. 나는 나에게 진정한 쉼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쉬고는 있지만, 쉬지 않는 그 기분을 아시나요.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약하거나 강할 뿐 사라지지 않는 그 기분이요.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습니다. 내가 단단하면 흔들릴 일이 적다고 하죠. 많이 좋아졌어요. 단단해지려는 일상의 노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요.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사랑해야 만 하는 사람이 나를 흔들어 놓을 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기는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일부러 더 흔들려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뭐가 옳은 걸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그래도 가중치를 둬서 더 귀를 열어야 할까요? 글쎄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또 반대 의견을 내면 대드는 말 안 듣는 딸이 되는 거 같아 대화가 끝나고 나면 기분이 상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것이 정말 현명한 처세일까요? 아니면 내 신념을 흔들고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는 대화를 하는 사람을, 그 사람이 나랑 가까운 사이든 먼 사이든 가까이하지 않는 게 현명한 걸까요?
가족이니까, 친한 친구니까, 오래 만났으니까, 그런 걸로 모든 걸 다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저런 책들에서, 심리상담에서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적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말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 싫은 그런 마음을 아시나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게 하고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도록 해주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멀리하고 싶은 이 마음은 이기적인 걸까요?
애초에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걸까요?
오늘도 나는 내 안에 많은 질문을 품습니다. 그리고 내 질문에 비슷한 질문을 가졌던 사람이 낸 답을 찾아 오늘도 헤맵니다. 그렇게 지금 찾은 저의 철학적 둥지는 스토아 철학입니다. 누군가에게 멋지게 설명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에 깊게 공명합니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영상을 첨부하며 답이 없는 인생의 질문들을 품은 나는 이제 ‘뭣이 중헌디’를 외치며 과제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과제, 내 삶에 진심 중요한 거 맞나?)
https://www.youtube.com/watch?v=heh5XLwZV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