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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ful Clara Feb 08. 2024

달리기가 알려준 삶을 대하는 태도

나와 달리기

 “인생은 아직 절반도 지나가지 않았어.” 

끝내주게 싫어하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2022년 1월말의 어느날. 첫째는 학교에 가고 21개월 둘째의 낮잠 시간이 되었다. 집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자고있는 아이 좀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며 집을 나섰다. 오래전 언니가 준 운동화와 10년은 족히 된 운동복을 위 아래로 챙겨 입었다. 문 앞에 서서 전화기에 미리 다운 받아놓은 러닝 앱을 켠 후 시작 버튼을 누른다. 내 두발은 탁탁 소리를 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걷기만 많이 걸었지 두발이 동시에 붕 뜨는 느낌은 난생 처음이다. 어색하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조금 부끄럽다. 나도 익숙하지 않은 나의 뛰는 모습.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후회하지 않을까. 40을 앞둔 나는 매일매일이 초조했다. 물론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남편도 그럭저럭 좋은점만 보기로 결심하면 제법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소셜미디어 세상과 조금 먼 주변만 둘러봐도 본인의 일을 멋지게 해내고 번듯하게 자리를 잡은 30-40대의 아이까지 있는 여성들이 가득하다. 그런 것들을 볼때마다 마음이 저리다. 갑갑하다. 배가 아픈건가? 내 마음속에는 ‘나는 특별해, 나는 뭔가 다른 사람이야, 하면 잘할거야..’등의 매가리없는 긍정의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는 늘 고민했다.머리속에는 실행없는 아이디어만 한 가득이다. 어딘가에는 나를 위한 조금 더 나은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고 그 바람과 함께 뭔가를 배워보려고, 시작해 보려고, 얕은 다짐과 얄팍한 노력을 반복해왔다. 그렇게 하면 어느날 행복과 만족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어딘가 근사한 곳으로 데리고 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은 꾸준함이 없다. 인내가 없다. 독함도 없다. 요령은 약간 있다. 소위 말하는 끼와 센스로 대학의 문을 지나서 저 멀리 미국 대학원 까지 가보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더라.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끝내주는 결과를 얻는 일은 어른의 세계에서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화끈하게 매운맛은 내 인생에 없었다.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모습과 대중의 기준에 맞춰진, 나의 기호와 상관 없는 것들로 채워지는 삶. 두렵고 귀찮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만 빙빙 돌던, 어렴풋이 믿고있는 나라는 멋진 사람. 마침내 달리기와 함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25분의 달리기. 페이스는 모르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기를 보는일도 쉽지 않다. 그냥 죽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끝이야. 나를 더이상 믿지 못할지도 몰라. 가장 두려운 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배가 땡기고 숨이 찰것 같은 달리기. 이 두개의 벽은 다른 것들에 비하면 비교적 빠르게 적응되고 사라진다. 장거리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한번도 뛰어본 적 없는 몸에서 이삼십분, 그리고 사십분, 여기서 또 한시간까지. 내 몸은 안 하던짓 하지 말라며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발가락에는 물집이 생기고 아치와 종아리는 당기고 허벅지는 찌릿찌릿. 속은 어찌나 자주 메슥거리는지. 아이들을 낳고 한달의 절반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몸으로 바뀌어버린 나의 몸뚱이는 넘어야할 산이 참 많았다.


 달리기는 매번 힘들다. 처음에도 힘들었고 여전히 힘들다. 달리기의 과정 중 가장 어려운 것을 꼽는다면 시작을 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날들은 덥거나 춥거나 비가오거나 아니면 내가 피곤하거나. 이 중 하나이다. 모든게 완벽한 날은 3프로가 채 되지 않는다. You are never going to feel like it. 라이프 코치이자 작가인 Mel robbins 가 한 말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이다. 그렇다. 절대로 하고싶은 기분이 들어 하게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그냥 하기로했다. 주 3회의 러닝 계획을 실천해보는 거다.


 처음 10키로를 뛰고나서 이틀동안 잠만잤던 내가 그 거리에 적응을 했다. 온몸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래한 불편함들이 부단한 단련을 통해 사라져간다. 아… 내 인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쾌감이다.이번 가을 시카고 마라톤에 출전하기로 했다. 대회 몇주 전 32킬로의 주말 장거리 훈련을 마쳤다. 다리도 아프고 나른한 기분에 소파에 누워 잠깐의 낮잠에 빠져보았다. 소파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몸과 몽롱한 느낌이 달콤했다. 운동선수도 아닌데 회복을 위해 낮잠까지 자야하는 나를 보면 가끔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즐겁다. 긴 거리를 뛰면 물론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이제 확실하게 아는 사실은, 다음번에는 덜 피곤할 거라는 것이다. 달리기가 주는 가르침이자 낙이다. 거리를 늘리고 다양한 시도를 할 때 마다 나는 힘들고 좌절하고 회복하고 감사하고 또 다시 도전한다. 마치 인생의 작은 형태와 같다.


 2023년 10월 8일. 시카고마라톤 대회날이다. 오전 8시 시작을 위해 6시반까지 출발점으로 가야한다. 이른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하고 혼자서 호텔을 나섰다. 마라톤 참가 겸 주말 가족여행이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추억의 도시, 차를 타거나 걷기만 했지 뛰어 본적은 없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달려볼 생각을 하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어둑어둑한 이른아침의 시카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시작점으로 이동했다.  북적이는 거리, 수많은 러너들이 모여 에너지를 나눈다. 10년을 살았던 곳 이지만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분이다.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세상이기에 또 다른 신선한 경험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배가 간질간질하다. 약간의 긴장감과 흥분된 분위기 안에서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4만 5천명이 넘는 러너들과, 코스의 처음 부터 끝까지 길가에 서서 끊임없이 응원을 보내는 인파가 놀라웠다. 그리고 나는 신나는 분위기를 즐기며 집중했다. 목표하는 바가 있었기에 달리기 페이스를 정하고 꾸준히 밀고 나갔다. 연습보다 속도도 빨라야 하고 거리도 길다. 거리연습, 속도연습등 각각 해왔던 훈련들의 경험을 대회날에는 한데 모아서 쏟아내 본다. 기대감과 약간은 떨리는 마음 덕에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솟아나니 가능한 일인 듯 하다. 게다가 중간중간 응원 장소를 정해서 알려주고 기다려준 가족과 친구들 있었기에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힘도 얻을 수 있었다.


 마라톤을 몰랐을 때와 대회를 위한 훈련을 하고 참가했을 때의 마라톤에 대한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마라톤은 우리가 흔히 미디어에서 봐왔던 정신력 테스트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고문하는 도구도 아니다. 터질 것 같은 심장과 마비되는 다리를 끌고 결승점을 지나 쓰러지는 고통이 아니다. 이것은 치밀한 계획하에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성장의 기쁨을 주는 스포츠이다. 정신력 만으로 역경을 이겨내는식의 드라마는 이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감정이 풍부하고 그것에 매우 충실했던 나는 스스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열정이라는 것은 생각만큼 불같이 뜨거우며 빠르게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마라톤이라는 레이스를 통해 스스로 모든것을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라서 몸과 정신을 단련하며, 힘든 순간도 의연히 인내할 수 있는 자세가 열정이었다. 달리기와 함께 내 마음속에는 나에대한 신뢰가 자라고 있다. 지난 40년간 믿지못했던 나를,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준 선물이다.


 간발의 차이로 나는 시카고 마라톤 목표 달성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10키로가 꽤나 힘들어서 페이스를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과정안에서 나의 훈련은 많은 발전을 가져와 주었고 시험은 행복하게 끝났다. 나 스스로를 테스트 해보기 위해 들어가 본 달리기의 세상. 나에게 생각을 실현할 힘을 주고, 지겹게 반복된다고 생각했던 일상 안에서의 숨겨진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누구나 들어봤을만한 그 문장.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마라톤이란, 레이스 자체 보다는 그 모든 과정이다. 과정 안에 나의 인생이 있었다. 달리기는 내 삶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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