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한 만큼 달렸던 하루

17주 트레이닝의 끝, 마라톤 레이스

by Mindful Clara

카우타운 마라톤 / Cowtown Marathon @Fort worth, Texas.

나의 5번째 풀코스 마라톤이자 서브4에 도전하는 대회였다.


이번 마라톤은 전반적으로 롤링힐이(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어지는 코스다. 게다가 날씨 또한 섭씨 27도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목표로 잡은 서브4에 대해 큰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전의 레이스들과 조금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과거 네 번의 마라톤이 어느 정도 아드레날린과 의지로 밀어붙인 레이스였다면, 이번에는 4시간 이하 마라톤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지든, 코스가 쉽지 않든, 17주 동안 준비한 훈련을 믿고 차분하게 달려보기로 했다.




마라톤 당일 아침은 언제나 비슷한 감정으로 시작된다. 약간의 긴장과 기대, 그리고 ‘아… 오늘 많이 힘들겠다…’ 하는 생각.

아침 7시, 비교적 이른 출발 시간이었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금세 더워질 수 있겠다는 사실이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더워지려고 이 시간에 이렇게 시원하기만 한거지....? 제발 구름이라도 잔뜩 껴있길..!!!’


내가 속한 corral 3은 7시 10분쯤 출발했다.

살짝 내리막이 있었던 출발점과, 초반 10k 구간은 비교적 완만했다. 그래서 오버페이스만 하지 않는 선에서, 후반의 체력 저하를 위한 약간의 여유시간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편안하게 유지 가능한, 평균 5분15초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고 몸도 무겁지 않았기에 10km 까지는 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하지만 10km를 지나자 예상대로 코스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앞바람도 점점 강해졌다.

언덕이 많은 코스에서는 달리기의 리듬이 쉽게 깨진다. 오르막을 오르며 호흡이 거칠어지고, 평지에서 다시 리듬 찾기를 반복해야 한다. 체력 소모가 크고, 그 과정에서 다리 역시 조금씩 피로해진다.


16km 부근에서 포트워스 다운타운 구간으로 들어왔다.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아이들이 보였다.

"엄마!! 여봉!!" 익숙한 목소리다. 아이들과 짧은 허그를 하고, 남편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힘든 레이스 중에도 그 순간만큼은 정말 힘이 난다.

바람은 계속 불었고 코스는 여전히 오르락내리락했다.

22km 부근에서 세 번째 젤을 먹었다. 카페인이 들어 있는 젤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속이 조금 불편해졌다. 약간의 미식거림과 함께 몸의 힘도 함께 빠졌다. 보통이라면 가장 기분 좋게 달려야 할 구간이었지만, 강한 바람과 함께 정신까지 어수선해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서 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텍사스에서는 해가 나오는 순간 순식간에 온도가 올라간다.


29km 부근에서는 좁은 산책로 구간으로 들어섰다. 그만큼 응원하는 사람 수는 적어졌지만, 순간 마음이 상당히 편안해졌다. 평소 혼자 달리던 길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마치 조용히 트레이닝하던 순간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때쯤 대략적인 계산을 해 보았다.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서브4는 충분히 달성 가능했다. 심하게 늘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심 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마라톤은 긴 거리이고, 컨디션은 순간순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33km 이후부터 피로가 밀려왔다. 특히 업힐이 나올 때 마다 호흡이 흐트러지며 과호흡이 오기도 했다. 그런 순간에는 잠깐씩 걷기도 했다. 억지로 밀어붙이다가 완전히 무너지기보다는 잠깐이라도 리듬을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36-37km 이후에는 거리를 잘게 나누어 생각했다. '500미터씩 앞으로만 나아가자.' 아무리 힘들어도 페이스가 6분대로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마지막 1km, 관중이 모여 있는 피니쉬라인 근처 구간에 들어섰다.

다시 남편과 아이들이 보였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순간만큼은 조금 더 힘있게 보이고 싶었지만, 갑자기 몸이 꼿꼿이 펴지거나 큰 미소가 지어지지는 않았다. 현실은 당장이라도 멈춰서 드러 눕고 싶은 기분이었다.


26마일/42키로 마크를 지나며, 이제 200미터면 끝이겠거니 했지만! 대회에서는 늘 그렇듯 추가 거리라는 것이 있다. 이번 대회는 500미터.

'이미 나의 레이스는 끝났다!'고 생각했던 몸에게는 생각보다 긴 거리였다. 코너를 한번 돌고 두번 돌았는데도 피니쉬라인이 보이 않았다.

아....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500미터...

그래도 결국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42.70km. 3시간 56분 22초.

이렇듯 레이스에서는 실제 거리(42.195km)보다 조금 더 달리게 되기 때문에, 목표 시간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여유를 계산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추가거리에 거의 3분이라는 시간이 들어갔다. 사실 그 정도까지 추가될거라는 것을 미리 세세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추가 거리 때문에 서브4를 할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 해보면 조금 아찔 하기도 하다.

다행히 여유 시간이 충분했고, 목표했던 서브4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 레이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의 레이스들이 대회 당일의 아드레날린과 의지로 버틴 결과였다면, 이번에는 준비한 만큼 달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의 목표는 늘 서브4였다. 하지만 그 목표에 걸맞은 속도를 제대로 훈련해 본 적은 없었다. 꾸준히 달리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서브4를 달성할 수 있는 스피드를 갖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스에 나가면 언제나 욕심이 생겼다. 요행을 바랬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몇 년간의 달리기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쉬운 페이스의 달리기를 주 3~4회 꾸준히 이어가며 부상 없이 체력을 쌓아 왔고, 그 시간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그 과정 역시 나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번 레이스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이 보였다. 가민 워치의 스테미나 그래프도 비교적 완만하게 내려갔다.
예전에는 레이스 초반에 과한 페이스로 달리며 에너지를 미리 다 써버린 뒤 끝까지 버티는 식의 레이스였다면, 이번에는 경사에 따라 속도와 보폭을 조절하고, 거리별로 집중해야 할 것을 미리 정해 놓은, 내 기준에서는 꽤 체계적인 레이스였다.

tempImageYffuSp.heic 2025 로마 마라톤
tempImagerGMhLW.heic 2026 카우타운 마라톤

주변의 취미 러너들을 보면 타고난 심폐 기능과 체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쉬운 조깅만 꾸준히 해도 자연스럽게 속도가 올라가고, 첫 마라톤에서 큰 어려움 없이 서브4를 달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심장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은 버거운 속도 훈련을 반복하면서 높은 심박수에 몸이 익숙해질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물론 타고난 능력이 좋은 사람들도 더 좋은 기록을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한계 안에서 힘든 훈련을 소화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은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운동이다. 각자의 타고난 몸이 다르고, 평생 동안 쌓아온 체력의 출발선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마라톤의 보람은 바로 그 훈련 과정 안에 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휴일에 마라톤 레이스에 참가한다는 것은 우리 가족의 시간과 자원을 함께 사용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첫째는 세 시간의 수영 연습을 빠지고 엄마를 응원하러 와주었다.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번 17주의 준비는 분명 체력의 성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하기 싫은 훈련을 참고 소화할 수 있는 근성과, 그 과정을 지나왔을 때 느끼는 큰 보상이 무엇인지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나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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