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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과 회개

by 김상원

정기적으로 영적 동반을 해주시는 신부님을 만난다.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다 보면, 가끔 신부님이 한 마디씩 하신다.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당신 생각을 나누신다. 나는 언제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일상적 어조로 평범하게 하시는 말씀은 나에게 영적 생각거리가 된다.


현대인의 정신건강 문제를 다룰 때, 나는 중독행동에 관심을 둔다. 알코올중독처럼 정신병리로 공식 분류되는 중독이 있는 반면에, SNS 중독, 쇼핑중독처럼 일상적이고 흔한 중독행동들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중독행동의 근저에는 회피의 기제가 작용하고 있는데, 현실적 문제나 실존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러한 주의분산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자원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간에 문제를 회피하며 자극을 추구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경제력이 있는 경우, 좀 더 쉽게 사회가 추구하는 경험이나 물질적인 것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곧바로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 쇼핑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잠시나마 “세련되게” 마음의 위안을 얻고 문제가 드러나지 않게 잘 포장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경제력이 없다면, 스스로를 “세련되게” 감추는데 제약이 따를 것이고 결과적으로 문제가 좀 더 쉽게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


소득격차가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나는 신부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고 말미에 ‘삶이 참 불공평하다’고 했다. 문제를 회피하는 수단에서도 드러나는 불공평함이 다시금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부님은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때에 빗대어, 기득권층이었던 바리사이 보다 낮은 곳에 있었던 세리나 창녀가 회개하기가 더 쉽다고 말씀하셨다. 아, 그렇지. 그 순간 나의 시선이 이 세상에 한정되어 있었음을 새삼 깨우쳤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성탄절을 기다리며 그동안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된다.



요한복음 17장 16절: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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