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니 평소에 즐기던 산책이 어려워졌다. 그래도 굳은 몸을 달래어 밖으로 나간다. 천천히 걸으며 산책로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잎이 많이 떨어져 나뭇가지의 형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가만히 보면 그 뻗어있는 모습이 사뭇 역동적이다. 어떤 나무에는 빨갛고 작은 열매들이 무성하게 달려있다. 비어있는 자리에, 그 빛깔이 무척 선명하다.
손끝이 시린 영하의 날씨지만,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따사롭다. 이 풍경 속을 걷고 있자니, 겨울이 다가올 봄을 품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나라가 위태롭다. 슬프고 괴로운 정국이다. 추운 날씨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길 위에 모여 섰다. 아아, 세대와 성별과 지역을 넘어서 하나 되는 모습이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지난달 28일에는 천주교 사제 1,466명이 시국선언을 했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의 전문을 읽으며, 힘 있는 언어로 ‘거짓의 사람’에게 사랑과 정의의 매를 드는 교회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느님 나라와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하며’로 마치는 이 선언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나는 이렇게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위태로운 우리나라의 현시점에 깨어있는 시민,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교회에서 불꽃이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래, 겨울은 다가올 봄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