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에서 만나는 마음의 움직임
상담실에서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내담자는 이 상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지만 말로 꺼내지 못하고, 또 어떤 이는 상담을 통해 비로소 그 상자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상자는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 애써 외면해 온 기억, 잊은 줄 알았던 상처 같은 것들을 조용히 품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고통스럽고 부끄러워서 차마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상자는 어디쯤에 놓여 있을까요? 어떤 이는 그것이 마치 옷장처럼 일상 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문을 열기만 하면 꺼낼 수 있지만, 오랫동안 외면하며 살아온 공간입니다. 또 어떤 이는 그 상자를 아무도 모르게 땅 속 깊숙이 묻어 두었다고 합니다. 누가 볼까 두려워, 심지어 자신조차 들여다보지 않기 위해 말입니다.
그러나 상담이라는 여정을 함께 걸으며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 상자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아주 살짝. 자물쇠가 풀리고 뚜껑이 삐걱이며 열리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해묵은 기억 하나가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상의 한 장면 속에서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꿈이라는 형태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이는 용기 내어 마주하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당황해서 얼른 뚜껑을 닫아버리려 합니다. 과거에 그 기억을 상자에 넣은 것도 하나의 선택이었듯, 우리는 또 한 번의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두렵지만 한 걸음 다가갈 것인가, 아니면 수치심과 고통을 피하고자 다시 외면할 것인가.
우리 마음 안에는 성장하고 치유되고자 하는 욕구와 지금의 익숙한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욕구가 함께 존재합니다. 나는 상자를 향해 다가가려는, 조용한 마음의 움직임을 믿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따라가며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다 보면, 상자 속에 담긴 오래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치유와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