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만 가지고 지원한 박사. 우여곡절 끝에 합격은 했습니다만..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국제보건 석사를 전공한 나는, 석사 졸업 후 1년 반정도 말라위에서 진행되는 모자보건연구 프로젝트에서 fieldwork 경험을 쌓고, 말라위에서의 연구경험/관심주제를 가지고 박사에 진학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하지만 당장 영어점수도 없고,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해서, 일단 말라위에서 귀국하여 서울에 있는 한 국제보건 연구센터에 연구원으로 취직해서 일을 하며 박사준비를 시작했다.
그 준비과정을 짧게 남겨보자면,
2018년도 12월에 있는 박사 지원을 위해 그 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구체적으로 준비한 사항은 아래와 같다.
영어점수 준비:
5~8월은 집중적으로 IELTS 준비를 했고, (미국 대학을 가려면 TOEFL준비를 해야 하지만, TOEFL준비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단 시간 내에 submittable 점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과감히 석사 입학을 위해 공부했던 TOEFL대신 IELTS를 선택하였다. *단, TOEFL대신 IELTS를 선택할 경우,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제한되고, 학교마다 minimum점수가 다르므로 일일이 확인하고 문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한 IELTS시험 성적표를 원본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등 절차상 복잡해질 수 있으므로 그리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8~11월은 GRE시험을 집중적으로 준비하여서, 9월에 한번 11월에 또 한 번 시험을 치고 11월 점수로 지원하였다.
SOP 준비: 박사지원은 거의 모든 학교가 공통적으로 영어점수와 함께 SOP(Statement of Purpose, 연구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구체적인 연구 주제를 서술하고, 지원 학교에 해당 연구의 멘토링이 가능할만한 교수님을 찾아보고 그분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식으로 적어내야 한다. 나는 대략의 박사동안 하고 싶은 연구 주제에 대한 idea를 가지고, 그에 맞는 교수님들이 계신 학교 위주로 list up을 하고, 그 학교들 홈페이지에 들어가 요구사흔 SOP의 requirements를 확인하고, 공통내용이 들어간 general 한 SOP를 작성하고, 여러 번 검수를 하여 최종본을 만든 다음, 각 학교마다 조금씩 custom 하여 학교별 SOP를 작성하였다.
이 모든 준비는 평일 9 to 6 근무시간 외에 이루어졌다. 평일에는 일을 마치고, 주로 집 근처에 24시간 카페에서, 주말에는 스터디카페에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거나 지원서를 작성하였다. (박사만이 나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의 열정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못할 것 같다.)
서울의 한 국제보건 관련 연구센터에서 일하면서 석사학위로는 참여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에, 박사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 줄 탈출구라고 생각했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적당한 영어점수와 나름 최선을 다해 작성한 SOP를 가지고 12월 중순에 미국, 영국, 캐나다에 있는 총 12개의 학교에 지원하였다.
그리고 박사지원보다 더 힘들었던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보통 12월 중순에 박사지원이 끝나면 그다음 해 초 1~3월 중에 박사합격 통보가 난다.
하지만 나는 3월까지 내가 지원한 12개의 학교 중, 10개의 학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1개의 학교에서는 장학금 없는 합격통보, 그리고 내가 최종합격한 학교에서는 4월 초까지 연락이 없었다. 당시 박사진학을 위해 다니던 연구소도 그만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더 마음이 초조했고 4월 초에 합격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최종 합격한) 학교에 내가 먼저 연락해서, 결과를 언제쯤 알려줄 수 있냐고 문의했다. 그리고 신기한 건 답장으로 "좋은 소식! 짠 너 합격했어~하지만 펀딩은 없어."라고 연락이 왔다. 자비로 박사를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나는 내 사정을 말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입학처에 문의했고, 다행히 학교에서는 혹시 다른 학생이 입학을 포기하면 장학금이 생기는 경우가 있으니 4월 말까지 기다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연락에 나는 다시 한번 희망회로를 돌렸고, 내가 박사를 가게 될 운명(?)이라면 이 학교에서 장학금을 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4월 말에 1년 학비에 80%에 해당하는 돈을 장학금으로 줄 수 있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그 학교의 offer를 수락하여, 박사진학이 결정됐다.
하지만 5월부터 미국에 들어가게 된 8월까지 내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첫 해 학비의 80%까지는 장학금으로 커버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20%와 생활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하얘졌다. 부모님도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나도 가진돈이 1년 반동안 연구원생활을 하며 부워놨던 몇 푼 안 되는 적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상하게 돈 때문에 주어진 학업의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되어 일단 가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박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을 달랬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는 기쁜 박사합격의 소식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가고 싶어 했지만 막상 합격소식을 듣고 아무런 축하도 (나 스스로부터 조차), 감사도 없이 바로 걱정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4인 기숙사 방을 구하고, 기내용 커리어 1, 수화물 1개만 싸들고, 내 통장에 있던 모든 돈을 달러를 바꾸어 들고, 한국을 떠나왔다.
목적지인 M주에 가기 전에, 비행기값도 아끼고, 오랫동안 못 보았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있는 콜로라도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박사로 가게 되는 것은 기뻤지만,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까지 돈 걱정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계산해 보니 박사생활동안 집세+생활비 말고도, 매 학기마다 보험비 등등 학교에 내야 할 추가금들이 있었고, 내가 가진돈+학교 장학금 말고도 만불정도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느끼기에) 내가 박사 가는 것에 그리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셨고, 물질적 지원에도 소극적이셨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로 했다. (사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나 잘 살 수 있다!라는 객기로(?) 아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걱정으로 시무룩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한국을 떠나와, 친구네 집이 있는 콜로라도에 며칠 머물게 되었다.
친구네 집에서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의 일상도 함께하면서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있었는데... 기적 같은 이메일 와있었다.
그 내용은 "한 학생이 다른 펀딩을 받게 되어서, 만불이 남아서 너한테 주기로 결정했어. 축하해!"였다.
브라보!
만불만 있으면 첫 1년은 어찌어찌 버텨볼 수 있었기에 너무 기뻤다.
그제야 몇 달 만에 안심이 되면서, 속으로 감사가 차올랐다. '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나의 작은 속삭임과 신음소리까지 들으시는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의 박사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우여곡절 끝에 박사를 시작한 것이, 더욱더 험난하고 눈물 범벅한 박사생활을 암시한 복선이 될 쭐은 몰랐다...다음에 계속...
#그렇게 정성 들여서 준비하고, 많은 불안을 안고, 의지와 결심을 다져서 시작한 박사생활... 박사만 시작하면 안정된 길이 보장될 것 같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박사시작 후 몇 년 뒤였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따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자연스레 내가 하나의 독립적인 학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박사 끝 무렵이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보지 않고 박사진학을 결정한 나 자신을 오랫동안 탓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은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고작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한걸음을 내딛어보는 것뿐인걸.. 그리고 내가 그렸던 이상적인 나의 박사 후의 삶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걸..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박사도, 지금도, 앞으로도 모든 것이 나의 삶의 과정임을 인정하고 후회하지 말고, 그때마다 나름의 최선을 다한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싶다.